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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설국열차] 끝이 없는 세상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

by seolma 2020.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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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설국열차_봉준호 감독

  여기에 열차가 있다. 인간 사회를 그대로 옮겨 담은 열차가. 같은 속도로 지구를 돌며, 멸망해버린 지구에서 유일하게 인간에 살아 숨 쉴 수 있는 공간이다. 

  

 

  때로 우리는 우리의 눈앞을 가린 수많은 것들로 인해 진짜 봐야 하는 것을 보지 못할 때가 있다. 이 영화 속 주인공인 커티스(크리스 에반스 역)가 그렇다. 커티스는 기차의 앞으로 달려나간다. 그것은 그가 더 이상 굶주림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유도 모른채 앞칸으로 끌려가는 어린 아이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신발을 던졌다가 팔이 잘리는 불합리한 처벌에 화가 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유가 어떻든, 아래 계급에 있는 사람들은 늘 혁명을 꿈꿔왔다. 심장을 졸이게 하는 장면들을 지나, 마침내 커티스는 민수의 도움을 받아 기차의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남궁민수(송강호 역)과 요나(고아성 역)는 기차의 문을 연다. 앞으로, 계속해서 앞으로 향할 수 있는 문을. 하지만 기차의 머리칸은 기차의 끝이다.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는, 완전한 끝. 인류에게 주어진 세상의 끝에서 커티스는 기차를 설계한 윌포드(애드 해리스 역)를 만난다. 윌포드는 말한다. 주기적인 혁명은 기차 안의 인구를 조절하는데에 효과적이라고. 기차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이 자신의 통제 아래에 있다는 윌포드의 그 오만한 말에, 커티스는 절망한다. 그리고 동시에 감화된다. 꼬리칸에서도 대장 역할을 하고 있던 커티스에게, 권력이란, 통제와 군림이란 당연하고 마땅한 것이었다. 인류에게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그 지도자를 위해 노래를 부르고, 찬양하고, 그 지도자는 그들을 위해 마땅히 자신을 희생해가며 집단을 유지시킨다. 커티스가 살아온 그 모든 삶이 커티스의 눈을 가린다. 잠시 현혹된 커티스는 그동안 사라졌던 아이들이 기차의 부품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동시에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 커티스와 민수는 그들의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몸을 던진다. 혁명은 늘 다음세대를 위한 것이다. 

 

  요나도 늘 민수와 함께 문을 열어왔다. 하지만 요나는 기차의 끝에서 다른 문을 본다. 커티스가 늘 향해왔던 '앞'에 있는 기차의 끝이 아니라, 기차의 옆쪽 벽에 난 문을 본다. 그 문은 오직 요나만이 열 수 있는 것이다. 기차의 체제에서 한 번도, 어떤 소집단에서도 지배집단에 속하지 않았던 존재. 요나와 어린 팀(멀칸트 호니레이스 역)만이 그 문으로 나갈 수 있었다. 단 한 번도 기득권의 달콤한 편의를 느껴보지 않은 그들만이 집단을 부수고 탈출할 수 있는 것이다. 

 

  요나와 팀은 손을 잡고 기차 밖의 세상에 발을 내딛는다. 기차 안의 사람들의 수많은 위협처럼 금방 몸이 얼어버리지도, 모든 생명체가 죽어버린 땅도 아니었다. 그들은 아마 살아갈 것이다. 살아서, 또다른 인류의 시작을 만들 것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설국열차

  넷플릭스에 올라온 설국열차가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얼마나 반영했을지 아직 다 보지 않아서 모르겠으나, 얼어붙은 세상 속 인류의 마지막 방주가 기차라는 점에서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배경이라고 생각한다. 백인 남자였던 커티스 대신 흑인 남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설국열차에서도 다음 세대의 아이들은 기차의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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