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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퀸스갬빗] 인생을 게임처럼, 아니 게임을 인생처럼!

by seolma 2021.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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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스 갬빗

 

  재밌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정확히 어떤 내용일지는 전혀 예상을 하지 못하고 봤었다. 한 편 한 편이 재미있고, 결말의 카타르시스도 꽤 큰 드라마다. 넷플릭스에서 뭘 볼지 고민하는 사람에게, 기꺼이 추천하고 싶다. 

  한국식 막장을 너무 많이 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화의 장면 장면마다 쓸데없는 걱정을 너무 많이 하게 된다. 생각한것보다 베스 주변 사람들이 친절하다는 걸 여러분은 미리 알고 봤으면 좋겠다.. 마음을 너무 졸여서 다 보고 나면 진이 빠질 지경. 영화는 실제로 꽤나 빠른 편집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마음에 들었다. 다만 7편 안에 등장하는 사람이 워낙 많다 보니 개개인의 스토리를 직접적이기보단 상징들을 통해 전달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조금만 대충 보면 알아차리지 못할 부분들이 많다는 생각은 든다. 

  물론 그런 것들을 하나도 알아채지 못해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드라마이긴 하다. 체스의 전략들이 무수히 나오지만, 배경지식이 전혀 없어도 재미있게 볼 수 있다. 나 역시 백이 흑보다 먼저 놓는다는 사실도 모른 채 드라마를 봤다. 

 

 

  다음 단락부터는 [퀸스갬빗]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하먼은 위대한 삶을 살았다. 당대 최고의 천재로, 체스 하나만으로 베스는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었다. 하지만 베스는 그보다 더 위대하게, 삶을 살아내었다. 자신을 끊임없이 옭아매는 것들로부터 멀어져, 자신이 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고뇌하면서, 괴로워하면서, 베스는 결국 자신의 길을 걸었다. 

  드라마를 보며 우리는 베스의 천재성에 감탄하는 동시에, 지극히 그 나이대다운 베스의 여러 고민들에 공감하고 또 귀여워하게 된다. 우리와 베스는 시대도, 가진 것도, 배경도 다르지만 드라마의 마지막 순간 우리는 마침내 자신을 괴롭히던 고민에서 벗어나 후련해하는 베스의 모습이 우리와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다음은 퀸스갬빗의 간략한 줄거리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베스고, 베스의 삶에서 주인공은 체스였다. 차 사고로 엄마가 죽은 뒤 오게 된 고아원에서 베스는 큰 어려움 없이 자란다. 지하실에 우연히 들른 베스의 눈에 들어온 것은 관리인인 샤이벌 씨가 두던 체스. 베스는 첫 눈에, 온 마음을 빼앗긴다. 
  베스는 샤이벌 씨에게 체스를 배운다. 베스의 천재성은 곧 두각을 드러내고, 베스는 12살의 나이에 고등학교 체스부 전체와 동시다발적으로 겨뤄 전부 이기는 기록을 세운다. 그러나 당시 고아원에서 나눠주던 안정제에 베스는 특히 심한 중독 증상을 보였고, 법이 제정되어 안정제의 투약이 중지되자 약을 훔치다 원장에게 들키게 된다. 그 결과로 베스는 체스를 금지당하고, 15살이 된 베스는 한 가정에 입양을 가게 된다. 
  단지 아내의 외로움을 채워주기 위해 피아노를 들여놓듯 베스를 데려온 남자는 놀랍지도 않게 곧 가정을 떠나고, 남겨진 앨마와 베스는 삐걱이던 처음과는 달리 훌륭한 모녀관계를 발전시킨다. 베스가 체스대회에서 큰 돈을 벌어오고, 어머니는 그런 베스의 매니저를 자처하며 베스를 훌륭하게 서포트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술을 먹던 습관으로 어머니는 체스대회가 열린 멕시코에서 사망한다. 장례를 홀로 치뤄낸 베스에게 남은 것은 지독한 고독과, 과거의 트라우마, 그리고 안정제와 술이었다. 
  베스의 어머니는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이었다. 베스는 그런 어머니와 단둘이 지냈고, 결국 어머니가 자살을 결심한 후 베스를 아버지에게 데려갔을 때의 거절을 경험했다. 마지막 순간 어머니가 맞은편의 차에 돌진하며 "눈 감아"라고 속삭였고, 그 이후에 베스는 체스를 만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그 트라우마는 꽤 오랫동안 베스를 따라다녔다. 
  외로움을 두려워한 베스는 수많은 친구들을 만난다. 하지만 그 관계는 짧고, 부질없으며, 대개는 베스의 천재성과 약물 의존성에 질려 끝을 맺었다. 베스의 불안정함은 절정에 이르고, 그 순간, 고아원에서 함께 지냈던 친구가 찾아온다. 베스는 그때 자신에게도 가족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베스에게 처음 체스를 알려주고 가능성을 꽃피워준 샤이벌씨와, 고아원에서 모든 순간을 함께 한 친구 졸린, 베스를 입양한 후 최선을 다해 베스를 사랑하고 보살핀 어머니. 그리고, 베스 자신. 
 
  영화의 중후반 부 거의 매 화 등장하는 소련의 그랜드마스터 보르고프는 베스에게는 가장 큰 산이자, 자신의 능력의 한계선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몇 십년동안 체스 정상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보르고프에게 베스는 두려움을 느낀다. 실제로 두 번의 패배를 겪으며 그 두려움은 더욱 공고해진다. 베스는 소련에 가지 않으려 했으나 주변인들에게 용기를 얻고, 졸린이 준 돈으로 비행기를 탄다.

 

 

 

  소련에서의 베스의 옷은 마치 체스의 필드 같다. 거대한 체스판 같은 옷을 입은 베스는 보르고프와의 경기에서 이긴 후, 마치 체스의 퀸과 같은 새하얀 옷을 입는다. 마치 체스 퀸의 모습처럼. 체스에서 가장 중요한 기물은 킹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기물이 바로 퀸이다. 퀸은 어디로든 움직이며 체스 게임을 좌지우지한다. 

 

 

드라마 전체에서 가장 소름돋았던 장면. 

 

  베스가 처음으로 샤이벌 씨와 고아원의 지하실에서 체스를 진행했을 때 베스는 실수로 퀸을 잃고, 샤이벌 씨로부터 이렇게 퀸을 잃으면 기권을 하는 거라는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샤이벌 씨는, 베스가 패배를 인정해야 할 때마다 나타나 베스에게 단호하게 말한다. 지금은 진 거라고. 그러한 매 순간 베스는 절망한다. 좌절하고, 자신의 한계선을 긋는다. 약과 술로 도피하며, 불안정한 자신을 외면한다. 하지만 그러한 도피는 결국 더 큰 좌절을 낳는다. 그리고 보르고프의 마지막 대결에서야, 베스는 약을 먹지 않은 자신을 마주한다. 약을 먹지 않고도, 베스는 자신이 체스를 이어갈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드라마의 마지막 순간 베스는 퀸 그 자체가 된다.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결코 잃지 않는 유일한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앞으로도 체스 경기에서 퀸을 잃고 질 수는 있어도, 퀸 자체인 자신을 버릴 일은 없을 거라는 확신을 나타내는 장면이다. 베스의 삶에서 베스가 다시는 자기 자신을 잃을 일이 없다는 걸, 영화는 그렇게 보여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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