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s

[삶과 죽음에 관련된 시 모음] 죽어가는 생명들을 위한 시

by seolma 2020. 8. 3.
728x90
반응형

 

 

 

 

유리창

                        정지용

 

유리에 차고 슬픈것이 어린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양 언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디치고,
물먹은 별이, 반짝, 寶石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琉璃를 닥는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흔 폐혈관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새山ㅅ새처럼 날러 갔구나!

(朝鮮之光, 89호, 1930.1)



 

 유리는 투명하지만 결코 그 너머로 투과될 수 없는 벽이다. 열없이 붙어서서 부모가 자식의 유골함을 문지르듯 하염없이 유리를 닦아내는 화자는 얼마나 간절히 유리를 투과하고 싶었을까. 간절한 이들은 손에 잡히는 것을 문지른다. 마법램프를 문지르는 이의 마음은 얼마나 간절했기에 그 속에서 나올 요정 지니를 상상했겠는가.

  죽은 자식을 생각하며 썼다는 이 시는 산새처럼 날아간 모든 것들에 대한 추모시이다. 닦아내고 또 닦아내어도 줄지 않는 슬픔을 어떻게든 이겨내 보려 외로운 밤 홀로 버둥대는 한 인간의 노력이다. 

 

 

아이유의 러브포엠_youtu.be/kcx0a2OAhN0

날아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마음을 담아.

 

 

 

                신경림

 

내 몸이 이 세상에 머물기를 끝내는 날
나는 전속력으로 달려 나갈 테다
나를 가두고 있던 내 몸으로 부터
어둡고 갑갑한 감옥으로 부터


나무에 붙어 잎이 되고
가지에 매달려 꽃이 되었다가
땅속으로 스며 물이 되고 공중에 솟아 바람이 될테다
새가 되어 큰곰자리 전갈자리까지 날아올랐다가
허공에서 하얗게 은가루로 흩날릴 테다


나는 서러워하지 않을 테다
이 세상에서 내가 꾼 꿈이
지상에서 한갓 눈물자국으로 남는다 해도
이윽고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그때 가서 다 잊는다 해도...

 

 

 

  

  유리창이 '나'가 아닌 존재의 죽음을 슬퍼하는 시라면, 눈은 '나'의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담담한 자세의 시라고 할 수 있다. 세상 모든 죽음은 필연적이다. 추모와 슬픔은 살아있는 이들의 몫이고, 죽음은 온전히 나 자신의 것이다. 모든 죽음은 마침내 잊힌다. 살아가며 우리는 수많은 자국들을 남기지만, 결국 자국은 남고 우리는 스러진다. 

  필연적인 것을 서러워하지 않는 태도. 그것만이 삶을 온전히 누릴 수 있게 만들어줄 것이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