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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수꾼] 지켜내는 것만이 삶이 아님을

by seolma 2021.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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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내는 것만이 삶이 아니다.

모두 잃고도 살 수 있다.

 

 

 

 

예민하여 미묘하고 그리하여 마침내 부서져버린 청소년기

 

 

  기태와 동윤, 희준은 친한 친구다. 중학교 때부터 친했던 기태와 동윤과는 달리 고등학교에 오며 친해진 희준은 둘 사이의 유대감과 소위 '잘 나가는' 기태의 모습에 열등감을 품고 있다. 기태는 그런 희준을 늘 살갑게 챙기지만, 그런 모습 역시 희준에게는 나쁘게만 다가올 뿐이다. 어긋난 둘의 관계는 희준이 좋아하던 여자애가 기태를 좋아하게 되며 극에 치닫는다. 끝까지 희준을 놓지 않고 제 곁에 두려는 기태의 욕심과 불어난 열등감에 결국 친구를 놓아버린 희준은 서로 끊임없는 갈등을 겪게 된다. 사과도 하고, 장난도 치며 관계를 회복하려는 기태의 모든 노력은 오히려 더 큰 단절만을 불러올 뿐이다. 결국 둘의 싸움은 절정으로 치닫고, 일방적으로 희준을 폭행한 기태와 그런 기태에게 네 곁에 진정한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을 것 같냐며 화를 내는 희준은 돌아올 수 없는 선을 건넌다. 결국 기태는 그런 희준을 포기한다. 희준이 전학 간 후, 기태는 이전보다 좀 더 거친 삶을 살아간다. 동윤이 가끔 그런 기태를 말리지만, 새로 사귄 여자친구로 인해 기태와는 조금 더 멀어지게 된다. 기태는 동윤의 여자친구에 대한 나쁜 루머를 동윤에게 전하고, 그로 인해 신경이 곤두선 동윤은 여자친구를 이전처럼 대하지 못한다. 동윤의 차가운 모습에 여자친구는 자살시도를 하게 되고, 동윤은 기태를 찾아가 네가 말을 전한 거냐며 화를 낸다. 기태는 오히려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동윤의 모습에 화가 나고, 그 모습을 오해한 동윤은 기태를 때린다. 이후 자신을 찾아온 기태에게 동윤은 모진 말을 하며 그를 보낸다. 기태는 희준을 붙잡던 것보다 더욱 간절히 동윤을 붙잡지만, 동윤은 내가 단 한 번이라도 네 진정한 친구였던 적이 있었을 것 같냐며 기태를 비웃는다. 결국 울며 동윤의 방을 나선 기태는, 곧 목숨을 끊는다. 

 

 

 영화는 기태의 죽음 이전과 이후를 번갈아 보여준다. 영화가 내뿜는 진한 우울함과 회색과 잿빛의 색채는, 세 친구가 만들어가는 비극적인 이야기와 어우러진다. 

 

 

 

  기태는 심한 애정결핍이었다. 어머니의 부재로 자리한 깊은 외로움은 기태를 교우관계에 매달리게 만들었고, 중학교 시절 자신에게 다가와준 동윤에게 특히 깊은 친밀감을 갖고 있었다. 단지 주목받는 것이 좋아 온갖 미친 짓을 하며 학교 '짱'을 먹고,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잘 알지 못했다. 기태는 오직 동윤과 희준과의 우정에 기대어 살았고, 그래서 그 우정이 무너지자 죽었다. 

 

 

 

 

  기태는 간절히 살고 싶어 했다. 그리하여 그는 적어도 최선을 다했다. 

  가정사 얘기를 피하는 자신을 희준이 뒤에서 험담하고 다닌다는 얘기를 듣고도 희준에게 자신은 어머니가 없어서 그런 거라고 솔직하게 얘기하고, 좋아하는 여자애 때문에 힘들어하는 희준을 살피고 자신이 친 장난으로 기분이 상한 희준에게 진솔한 사과도 건넸다. 하지만 그런 진심은 매번 거절당했고, 희준 역시 그의 입장에서 기태의 진심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희준의 차가운 거절에 무안한 기태는 매번 폭력으로 상황을 마무리한다. 그 이외의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동윤이라면 그런 식의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겠지만, 희준은 기태를 친구로 여기지 않았으므로 그러한 폭력을 되려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역시 너는 그런 인간일 뿐이었다면서. 

  그 후의 기태에게는 동윤만이 남았지만, 기태의 실수와 동윤의 오해로 둘의 관계 역시 파국으로 치닫는다. 제대로 오해를 푸는 법도 모르고 너까지 이러지 말라며 동윤의 앞에서 울며 비는 기태를, 화가 난 동윤은 그대로 외면하게 된다. 이 장면은 마음이 아프다. 우리 모두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동윤과의 관계가 기태에게 유일하게 남은 것임을, 그리하여 이 다음 순간에 기태가 죽게 될 것을. 

 

  기태는 그렇게 죽었다. 살고 싶어 최선을 다해 손에 잡히는 것을 붙잡았지만 종래에는 아무것도 쥐지 못한 채로. 

 

  한 번쯤은 학창시절 자신보다 잘 나가는 친구에게 부러움과 시기를 품어본 적 있을 것이다. 혹은 나보다 다른 친구와 더 잘 노는 모습에 질투를 품고, 한 친구를 모조리 소유하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친구를 오해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다시는 화해할 수 없을 것처럼 싸우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늘 다음 기회가 있다. 
  적어도 우리가 살아있기에 그렇다. 

 

 

  기태는 죽었다. 죽은 이에게는 그 어떤 기회도 남지 않는다. 친구와 오해를 풀고 사과할 기회도, 용서를 받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 더 나은 내일을 살 기회도.

  반면 죽음 뒤에 남겨진 사람들의 삶은 온통 기회로 가득하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삶을. 죽음을 잊고 살아가야만 하는 의무가. 그러기 위해 기태의 아버지는 기태의 친구들을 만나고 다니며 아들의 죽음의 이유를 찾고, 동윤은 아직 죽지 않은 기태의 환상을 본다. 

"짱 먹으니까 좋냐?"
"좋다."
"뭐가 그렇게 좋냐."
"이렇게 주목 받아본 게 처음이니까."
"왜 그렇게 남 신경 쓰냐."
"그러게."
..
"사라질 거에 너무 신경쓰지 마라."

_동윤과 기태의 대화

 

  한 순간의 실수로 죽어버린 제 친구의 환상을. 이제 와서야 해주고 싶은 말을. 

 

  바람에 날아가 버릴 만큼 가벼운 우리들은 날아가지 않기 위해서 옆에 있는 무언가를 붙잡는다. 조그마한 지구에 70억의 인구가 바글대며 살아가는 현대에서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것은 대개 옆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우리의 사랑이고, 관계이고, 가정이다. 하여 그 억지로 무겁게 만들어진 것들은 우리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 모든 관계맺음으로 인해 너는 네가 원하는 만큼 충분히 무거워졌는가? 아니면 그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너는 아직도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벼운가?

출처: https://in-mybookshelf.tistory.com/8 [내가 사랑하는 것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인간이란 존재의 가벼움에 대하여

단 한 번 뿐인 삶, 그 무의미함 책에서는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을 설명하며 우리의 삶이 반복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살면서 수많은 선택들을 하지만 결코 다른 선택의 결과를 알 수 없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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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

출처: https://in-mybookshelf.tistory.com/32 [내가 사랑하는 것들]

 

[바깥은 여름] 죽음 후에 남겨진 사람들

입동 / 007 & 노찬성과 에반 / 039 우리의 곁에는 언제나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그 죽음은 우리를, 우리 곁의 친구를, 연인을, 부모를, 자식을 노린다. 죽은 것의 곁에는 슬픔이 남는다. 그 슬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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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모두 잃고도 살 수 있다. 만약 기태가 살았다면, 모든 절망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살았다면 동윤과 기태는 화해할 수 있었을 것이고, 먼 훗날 이때를 회상하며 우리가 얼마나 바보같았었는지를 마음껏 비웃을 수 있었을 것이다. 

  영화의 제목은 파수꾼이다. 모든 걸 지켜내려다 결국 자신조차 지키지 못한. 

  지켜내는 것만이 삶이 아니다. 모든 것을 잃고도, 인간은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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