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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책

[시선으로부터-정세랑] 죽지 않았으니까 사는 것처럼 살아야지.

by seolma 2022.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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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이 책을 아주 오래 보아오면서, 문득문득 보일 때마다, 다각으로 나뉘어진 푸른 원색과 프리즘의 오색빛같은 배경색과 시선이라는 제목에서, 이 책에서 말하는 시선이 무엇이길래 이리도 예쁘고 고운 빛을 낼까, 궁금했었다. 근 일 년 간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며 이곳저곳에서 책 제목을 마주할 때마다 '시선으로부터,'라니, 참 예쁜 말이다, 어떤 시각적 심상을 담은 책일까 생각했다. 시선이 사람 이름일 줄은 몰랐다. 정말로.

 

 

지난 세기 여성들의 마음엔 절벽의 풍경이 하나씩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최근에 더욱 하게 되었다. 십 년 전 세상을 뜬 할머니를 깨워, 날마다의 모멸감을 어떻게 견뎠느냐고 묻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떻게 가슴이 터져 죽지 않고 일흔아홉까지 살 수 있었느냐고.(책 15장)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구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인생에 간절히 필요로 하는 모든 요소를 한 사람이 가지고 있을 확률은 아주 낮지 않을까요?" (책 21장)

 

다 포기하고 싶은 날들이 내게도 있습니다. 아무것에도 애착을 가질 수 없는 날들이. 그럴 때마다 생각합니다. 죽음으로, 죽음으로 향하는 내 안의 나선 경사로를 어떻게든 피해야겠다고. (...) 스스로의 비틀린 부분을 수정하는 것, 그것이 좋은 예술가가 되는 길인지는 몰라도 살아있는 예술가가 되는 일임은 분명합니다. 매혹적으로 보이는 비틀림일수록 그 곁에 어린 환상들을 걷어내십시오. 직선으로 느리게 걷는 것은 단조로워보이지만 택해야 하는 어려운 길입니다.(30)

 

엄마 나는 죽지 않았어. 죽지 않았으니까 사는 것처럼 살아야지.(100)

 

어떤 말들은 줄어들 필요가 있었다. 억울하지 않은 사람의 억울해하는 말 같은 것들은.(175)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178)

 

 

책은 첫 장부터 공감의 향연이었다. 때때로 내가 느껴왔던 가슴 메어지고 온 몸이 불 탈 것 같은 분노, 가슴 터지는 억울함, 이루 말할 수 없는 한()과 같은 감정들을 토해내는 주인공들을 보며 대신 마음이 조금이라도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맞아, 그랬지, 나도 저런 생각들을 했었어. 시선이 무서워 속으로 삼켜내길 수 천 번이었지만, 나도 저런 말들을 저렇게 하고 싶었어.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모든 면에서 닳아 없어지지 마십시오
(229)

 

뻔뻔스럽게, 배려해주지 말고 일을 키우세요
(269)

 

 

시선에게서 얻는 위안들. 
내게는 없는, 스스로의 삶을 살아내고 그 삶을 후대에게 물려주길 원했던 멋진 할머니가 남겨놓은 말들은 손자인 화수와 지수와 우윤이에게만이 아니라 내게도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위안만으로 만족하기에 세상은 너무 공격적이었다. 

 

"낳지 않아."
(...)
"사람이 사람에게 염산을 던지는 세계에 살러 오라고 할 수 없어요. 도저히."(321)

 

 

 

그럼에도, 여전히 화가남에도 이야기는 아름다웠다. 그래 딱, 현실처럼.

공격적인 세상에 매번 분개하고, 그 분노를 결코 흘려보낼 수 없어서 나 역시 아이를 낳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럼 나의 어머니가 나에게 전해준 그 모든 아름다운 말들과 보여준 풍경들은 영영 그쳐버리겠지. 그러나 동시에 구김과 결핍과 찌그러진 애증은 사라질 것이다. 

 

새를 다 죽여놓고는 웃는 어른들과, 한 사람의 삶을 찢어놓고는 자살해버린 남자와, 사람을 오브제로만 보고 칼을 던진 미술가가 살아숨쉬는 세상에서도 아기들이 태어나고 부질없는 노력을 하는 이들이 있고 우리의 삶은 때로는 거칠어도 가끔 빛이 나고. 

삶에 도무지 애착을 가질 수 없는 순간도 살아내고 버티다보면 어느 날에는 해가 뜨고. 

 

 

 

우윤이는 약해보이지만 시선으로부터 뻗어나왔지. 지지않고 꺾이지 않을 거야. 그걸로 충분할거야.(330)

 

시선으로부터 내려온 위안과 삶의 의지와 곧은 투쟁 같은 것들이 이어지든, 그렇지 않든 간에. 쉼표로 끝나는 아름다운 이야기여,

시선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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