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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책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김초엽] 이해하여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여 이해하는 것

by seolma 2022.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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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의 첫 글이 이 단편집 중 제목에 해당하는 작품만을 읽고 쓴 글이었다면, 이번에는 단편소설 전체를 아우르는 이야기들을 해보려고 한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재미가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책이 나온 역순으로, <방금 떠나온 세계>를 읽고 김초엽 작가의 데뷔작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은 후, 오히려 두 단편집이 가지고 있는 중심 주제와 감동이 더 선명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방금 떠나온 세계>가 이해와 사랑에 관한 책이라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다름과 융화에 관한 책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등장하는 건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전자가 개인적, 사적인 이해였다면, 후자인 이 책은 사회적 이해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이해하지 않는 것들이 아니라 이해하지 않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어져버린 것들과 마주한다. 

 

  •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 스펙트럼
  • 공생 가설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감정의 물성
  • 관내분실
  •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가령 역사에서 끊임없이 배제되어온 사회적 약자들이 그렇다. 각기 다른 단편들 속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다지 이 사회에 완벽히 부합하고 '정상'적인 범주에 해당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얼굴에 선천적으로 큰 얼룩이 있는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의 주인공과, '스펙트럼'에서 주인공이 만난 외계인들과, '공생 가설'에서 사회에 녹아들지 못하고 천재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에만 열중하는 화가 '류드밀라'와, 이미 오래 전 잊혀지고 중단된 여행을 하기 위해 모두의 거부와 반대 속에서도 우주 정거장에서 외로운 여행을 떠나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노인 안나와, 우울증을 앓으며 그 감정을 손에 쥐고자 하는 '감정의 물성'의 보현과, 자식을 사랑하지 못했던 '관내분실'의 엄마 김은하와, 표준 골격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출산까지 겪은,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의 동양인 여성 우주인 재경이 그렇다. 

사회는 그들을 이해하지 않는다. 그 단적인 광경은 마지막 단편선에서 가장 짙게 드러난다. 우연히 발견된 우주 터널의 너머를 탐구하기 위한 여정, 마지막 단계로 보내질 신체가 개조된 인류들을 선발하게 된 지구. 막대한 예산과 시간이 드는 판트로피를 위해 인공지능이 후보자들을 선발했다. 
그저 다른 두 명의 우주인들처럼 지원하여 훈련하고 개조되었을 뿐인데, 동양인 여성이라는 점만으로 재경은 소수자를 상징하며 대표와, 동시에 과도한 'political correctness, PC(정치적 올바름)'의 결과라고 비판과 비난을 하는 이들의 표적이 되었다. 재경은 그 모든 것을 감당했으나, 우주선이 출발하는 전날, 모든 책임을 뒤로 하고 심해로 뛰어들었다. 그 사실은 실패한 우주선의 발사와 함께 묻혔으나, 이내 세상에 드러날 때에는 재경과 재경이 대표하던 집단 전체가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작가는 말한다. 

 

어떤 사람의 실패는 그가 속한 집단 전부의 실패가 되는데, 어떤 사람의 실패는 그렇지 않다. (308)

 

굳이 예시를 들지 않아도 문장과 관련된 사건들을 쉬이 떠올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재경을 동경하여 우주인이 되기 위해 지원한 가윤은 진실을 알고 난 후 재경이 선택한 해방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복되는 비난과 비판 속에서 가윤 역시 이 악물고 노력했으나, 재경과 가윤이 남성이 아니기 때문에 듣게 되는 말들은 달라지지 않는다. 재경은 그저 그 굴레를 끊으려 했고, 가윤은 그가 끊고 나간 자리에 들어가 우주로 향했다. 재경은 여전히 '무책임'하고 '자격이 없는', '실패한 PC'의 단적인 표상으로 욕먹고 있겠지만, 재경은 심해를 자유로이 헤엄치고 있고, 가윤은 그 누구도 보지 못한 우주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 지독한 사회적 몰이해를 해결할 방법으로 작가가 보여주는 것은 첫 번째 단편인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이다. 

 

하지만 이 단편은 역설적이게도 완벽한 유토피아와 그 곳을 떠나는 이들을 보여준다. 다름이 문제가 되지 않는 세상, 차별과 편견이 없고 아무도 배척하지 않는 세상. 그러나 이상하게도, 성인이 되어 순례를 떠나는 이들 중 몇몇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그들이 선택한 곳은 완벽한 유토피아가 아니라, 그들의 다름이 문제가 되고 차별의 조건이 되는 우리의 세상이다. 고쳐야 할 것들이 만연한 지구. 왜냐하면 그들이 지구에 사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계속해서 끊이질 않는 사회적 문제들을 떠안은 채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고 세상이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잃지 않은 채 살아간다면, 우리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도 그것과 꼭 같을 것이다. 

 

https://in-mybookshelf.tistory.com/119

 

[로라(방금 떠나온 세계)-김초엽] 사랑하지만 끝내 이해할 수 없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데뷔한 김초엽 작가의 신작이다. SF라는 장르가 얼마만큼 서정적이어질 수 있나를 보여주는 것 같은 김초엽 작가의 단편들은 한층 그 색채가 깊어졌다.

in-mybookshelf.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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