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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책

[로라(방금 떠나온 세계)-김초엽] 사랑하지만 끝내 이해할 수 없는

by seolma 2022.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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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데뷔한 김초엽 작가의 신작이다. 

SF라는 장르가 얼마만큼 서정적이어질 수 있나를 보여주는 것 같은 김초엽 작가의 단편들은 한층 그 색채가 깊어졌다. 아직 이 책을 읽는 중이지만, 이제껏 읽은 세 편의 단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로라'를 소개해보려 한다. 

 

 

'로라'는 뻔한 로맨스 소설이다. 

주인공은 사랑하는 사람을 이해하고자 아주 오래, 아주 깊이 노력했으나 결국 연인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에게 있어야 할 팔이 하나 부족하다고 느끼는 로라는 자신의 연인이 결코 자신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럴 때가 있었다. 로라에 대해, 로라의 삶에 대해, 로라의 감각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기 시작한 이후로, 이렇게 아주 일상적인 감각이 이질적으로 느껴질 때가. 진은 손바닥의 열기와 손등에 닿는 찬 공기의 대비를 생각하며, 동시에 로라를 생각했다. 그 삶은 어떤 감각으로 가득 차 있을까.

 

 

'로라'가 뻔하지 않은 소설이 된 것은 소설에서 소개하는 새로운 소재 때문이다.

'로라'에서 다루는 것은 어긋난 고유수용 감각에 의해 자신의 신체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그리고 그 사람들의 주변 사람들이다.
있는 팔을 잘라내고 싶다거나, 멀쩡한 눈을 파버리고 싶다거나, 치료 목적 외에 신체적 능력을 증강시키기 위해 수술을 받는다거나, 혹은 없는 신체를 느끼며 인공 신체를 부착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쉽사리 이해받지 못한다. 그들은 이해의 범주 안에 놓기에는 '지나치게', '이상하다'.

그런 이들을 사랑하는 것은 고통과 죄책감을 동반한다. 사랑함에도, 그들을 결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렸을 적, 지금보다야 안정적이고 일반적인 사회를 보고 들으며 배웠다. 사람들을 그리라고 하면 적당히 살색의 얼굴과 검은색의 머리를 그렸고, 눈코입과 팔다리를 그려넣고 미소로 마무리했다. 
그랬던 것, 굳이 한 명 한 명을 전부 그리기 귀찮을 정도로 같은 모습인, 우리가 배운 사회와 지금 우리가 살아가며 직접 대면하는 사회는 얼마나 다른지.

'살색' 사람들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었고, 사람은 반드시 이성을 사랑하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고, 여성, 혹은 남성으로 태어났다고 스스로의 성에 모두가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몰이해는 삶의 다양한 부분에서 발생한다. 고작해야 음식 취향이 될 수도 있고, 결코 맞닿을 수 없는 신념일 수도 있다. 

우리는 이제서야, 개별 인간은 결코 같지 않으며, 배움 뿐 아니라 타고나는 뇌 자체가 서로 같지 않음을 알고,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트랜스젠더나 호모섹슈얼리티는 '결함'처럼 받아들여진다. 

 

"평생을 살아갈 집의 설계자가 네게 도면을 내밀었어. '이게 당신의 집이에요.' 분명히 도면에는 커다란 방이 하나 있어. ...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실제로는 그 방이 없는 거지.
...
잘못된 건 나일까, 아니면 이 집일까, 애초에 내가 받은 도면일까?"

 

 

주인공 '진'은 '로라'를 사랑한다. 진은 세 번째 팔의 감각을 생생하게 느끼며 인공 팔의 이식을 원하는 로라를 이해하기 위해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고유수용 감각에 이상이 있는 사람들을 조사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 끝에도, 진은 로라를 이해할 수 없었다. 

 

 

로라를 이해하는 단 한 사람, 진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 그러나 그것은 교과서의 특정 구문을 외는 것처럼, 수식을 기계적으로 옮겨적는 것처럼, 진짜 이해로부터 자꾸만 미끄러졌다.

 

 

진과 로라가 그다지 특이하지는 않다. 작은 마을의 작은 공동체 속의 가족 관계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순간은 꽤 자주, 꽤 오래,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이해가 필요한 걸까. 과연 우리가 원하는 이해란 뭘까. 상대방을 내 마음에 쏙 들게 이해하려다 우리는 타인을 멋대로 재단하여 조각내고 있지는 않나. 

 

 

사랑하지만 끝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신에게도 있지 않나요.

 

 

정말 그렇다. 무언가를 사랑해본 사람이라면, 사랑에서 피어나는 이기심과 소유욕의 끝에 존재하리라고 믿었던 완벽한 이해란 결코 존재하지도, 있을 수도 없다는 걸 쉬이 깨닫게 된다. 

과학의 발전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면, 언젠간 이 지독한 몰이해도 해결될까?

 

 

김초엽은 이 단편집 전체를 통해, 그것에 대해 대답하고 있다. 

 



출처: https://in-mybookshelf.tistory.com/2?category=890862 [내가 사랑하는 것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이별에 SF를 더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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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mybookshelf.tistory.com

 

덧붙이는 말)
책은 이해할 수 없음에도 사랑하는 진과 로라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며 끝난다. 한 개인의 삶에서라면, 그 정도로 만족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70억명의 몰이해 속에서도 단 한 명이 나를 사랑한다면 인간은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해란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그러니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예외와 돌연변이와 개인의 변덕을 수용하고 인정하는 순간, 인류가 70억 갈래로 조각나버리는 것은 아닌지, 호모 사피엔스를 한 갈래로 묶던 모든 거짓된 믿음이 깨지는 것은 아닌지 덜컥 두렵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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