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Things that I love
  • books, poems, cinema, songs
  • welcome,
내가 사랑하는 책/시 모음집

[외로움/우울 관련 시 모음]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어떻게 사랑하는지도 모르고

by seolma 2020. 8. 10.
728x90
반응형

 

 

 

 

 

와사등

              김광균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 있다.

내 호올로 어딜 가라는 슬픈 신호냐.

 

긴-여름해 황망히 나래를 접고

늘어선 고층(高層) 창백한 묘석(墓石)같이 황혼에 젖어

찬란한 야경(夜景) 무성한 잡초(雜草)인양 헝클어진 채

사념(思念) 벙어리 되어 입을 다물다.

 

피부(皮膚)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

낯설은 거리의 아우성 소리

까닭도 없이 눈물겹고나.

 

공허한 군중의 행렬에 섞이어

내 어디서 그리 무거운 비애(悲哀)를 지니고 왔기에

길-게 늘인 그림자 이다지 어두워

 

내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슬픈 신호(信號)기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와사등; 지난날의 가스등을 이르는 말. 1930년대에는 거리에 와사등이 켜 있었다.
차단-한; 차디차면서 빛나는. 차가운 밤길의 불빛을 시각적으로 표현.

  고층 빌딩을 차가운 묘비석에, 찬란한 야경을 혼란하게 헝클어진 잡초에 빗대어 도시문명의 무질서하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그리고 있다. 

  이 시는 화려하고 복작이는 도시 속에서 고독함을 느끼는 화자의 정서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겪고 있을 외로움과 불안에 대한 이 시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지만 결코 다른 이와는 나눌 수 없는 감정들에 대한 일기다.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기형도

 

그는 어디로 갔을까

너희 흘러가버린 기쁨이여

한때 내 육체를 사용했던 이별들이여

찾지 말라, 나는 곧 무너질 것들만 그리워했다

이제 해가 지고 길 위의 기억은 흐려졌으니

공중엔 희고 둥그런 자국만 뚜렷하다

물들은 소리없이 흐르다 굳고

어디선가 굶주린 구름들은 몰려왔다

나무들은 그리고 황폐한 내부를 숨기기 위해

크고 넓은 이파리들을 가득 피워냈다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돌아갈 수조차 없이

이제는 너무 멀리 떠내려온 이 길

구름들은 길을 터주지 않으면 곧 사라진다

눈을 감아도 보인다

 

어둠 속에서 중얼거린다

나를 찾지 말라..... 무책임한 탄식들이여

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이여

 

 

  살다가 보면 어느날엔가 문득 모든 것이 잘못되었고 크게 틀려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한다. 하지만 삶에는 길이 없고 당신이 걷는 그 길이 바로 당신이 만들어 온 삶이기 때문에, 틀리지 않은 것이다. 잘못되었다면 고칠 수 있고, 실수는 잊고 또 잊혀질 수 있다. 무책임히 주저앉아 쉬다가도 다시 또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삶이란 그렇게 사는 것이다.

크리스티안 팔머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어린 날에 우리는 모두 사랑받고자 한다. 그 노력들은 모든 것이 가상하나 동시에 안쓰럽고 또 허무하다. 누구나 사랑받고 싶기 때문에 누구나 쉬이 사랑을 베풀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사랑받을 만한 사람들이다. 사랑받고자 한다면, 너 자신을 사랑하라. 그럴 가치조차 없는 사람으로 자신을 폄하하지 말라. 
반응형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