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Things that I love
  • books, poems, cinema, songs
  • welcome,
내가 사랑하는 영화

[원령공주] 자연과 인간, 대립과 공존에 관하여

by seolma 2020. 8. 17.
728x90
반응형

원령공주_지브리 스튜디오

 

  원령공주는 지브리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들어봤을 만한 영화다. 지브리 스튜디오 특유의 감각적인 장면들과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이 영화는 영화가 주는 교훈을 떼어놓고 보더라도 충분히 아름답고, 재미있다.

  하지만 원령공주의 진가는 그 이면에 놓인 질문에서 드러난다. 인간은 진정 자연의 적인가? 두 가지는 서로 화합할 수 없는가? 그리고 끊임없이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주인공 아시타카는 영화의 끝에서 마침내 무언가를 이루어 낸다. 

 

  영화의 초반에는 재앙신이 되어버린 멧돼지가 등장한다. 이 멧돼지는 아시타카가 살던 마을과는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맞은 총알을 품고 멀고 먼 마을까지 찾아와 아시타카의 팔에 저주를 남기고 죽는다. 자연과 공존하며 살아가던 아시타카의 마을에서는 생뚱맞을 수밖에 없는 자연의 보복. 이는 현재 우리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다르지 않다. 다른 대륙에서 버린 쓰레기들이 엉뚱한 바다 한가운데 모여 독이 되고, 북쪽에서 피운 불이 빙하를 녹여 남쪽의 섬들이 물에 잠긴다. 지구의 대기와 해류는 순환하고 지구는 오직 하나이므로, 지구의 모든 것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누구도 그 사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제게 주어진 저주를 풀기 위해 먼 길을 떠나는 아시타카는 점차 다른 세상을 마주하게 된다. 그들은 자연을 기꺼이 정복해야할 대상으로 여겼으며 철을 얻기 위해 하나의 산을 모조리 불태워버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다른 곳에선 손가락질받던 나병 환자들을 수용했으며 차별받던 여자들을 철 생산의 가장 앞에 내세웠다. 마을의 모든 사람들은 그 마을과 그들의 지도자, 에보시를 사랑한다.

지도자 에보시

 

  이 영화는 에보시를 통해 인간의 두가지 면을 모두 보여준다. 가차 없는 파멸의 단면과 포용과 융합의 단면 두 가지를. 여성의 권위가 남성을 따라가지도 못하던 시절, 한 마을의 지도자 자리에까지 오른 에보시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명하다. 하지만 이런 에보시가 자신뿐 아니라 다른 여성들에게도 그러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 그는 분명 존경받아 마땅한 리더일 것이다. 

  그러나 자연은 그를 증오한다. 에보시가 불태운 숲에 사는 이들은 하나같이 인간에 대한 지대한 원망과 증오를 품는다. 인간이 버린 아이인 원령공주 또한 마찬가지이다. 인간이 낳았으나 늑대의 딸로 큰 산은 에보시를 죽이고자 한다. 자연과 인간은 그렇게 서로에게 적이 된다.

 

 

  하지만 이런 대립상황에 난데없이 끼어든 아시타카는 인간의 편도, 자연의 편도 들지 않는다. 대신 그는 관찰하고 지켜보며 끊임없이 질문한다. 마침내 인간의 욕심이 자연의 가장 순수하고 궁극적인 것을 탐할 때, 아시타카는 그것을 막기 위해 싸우지만 동시에 무사들에게 공격받는 마을 사람들 또한 지키고자 한다. 그는 인간이었고,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알았다. 

 

  에보시는 결국 생명과 죽음의 신인 사슴신의 머리를 잘라냈지만, 산과 아시타카는 그 머리를 사슴신에게 돌려준다. 그 과정에서 에보시는 늑대들의 도움을 받아 살아남게 되고, 자신이 마냥 적이라고 생각했던 자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엉망이 된 마을과 얼마 살아남지 못한 마을사람들을 바라보며, 에보시는 다시 힘을 내어 새로운 마을을, 더 나은 마을을 세우자고 말한다. 에보시의 반성과 의지는 인간 전체를 반영한다. 우리 역시 반성하고 새로이 시작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보여준다.

  하지만 이 최고의 결말을 만들어낸 산과 아시타카는 헤어진다. 그들은 서로를 진심으로 좋아하며 친구라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해 둘은 다른 길을 걷는다. 다만 둘은 서로를 만남으로써 성장했고, 그 성장은 아마 세계를 바꾸어 놓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이별은 그다지 아쉽지 않게 느껴진다.

 

  영화는 이렇게 끝나지만 그 여운은 길다. 원령공주가 남기는 의문들이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을까?

  정말 인간은 자연의 적이고, 자연과 대립되는 존재인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우리 자신에게 달렸겠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세상이 보여질 거란 것은 분명하다. 과거 자연을 인간이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창고로 보았던 근대 서양인들은 현재의 파괴된 자연을 만들었고, 이 위기를 극복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찾아내어 실천하고 있다.

  우리가 어떤 길을 걷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바뀌고, 이 지구가 바뀔 것이다.

반응형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