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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영화

[짧은 글] 영화 불한당을 보면서

by seolma 2020.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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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단 하나의 이유로

 비싼 양복을 차려입고 총을 든 남자 둘이 등장하는 영화. 느와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봐도 나쁘지 않을 영화고, 느와르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첫 느와르로 봐도 괜찮을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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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_불한당

 

 

 

    불한당을 보면서 우리가 재호와 현수의 삶을 응원하고 흥미진진하게 보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을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지고, 지나치는 짧은 순간들을 아쉬워하게 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우리의 삶에서는 흔히 만날 수 없는 진실된 사랑이 영화 속에 드러나기 때문이 아닐까.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선의를 가진 척 위선을 떨어야 하는 우리는 사랑의 가치를 잘 모르고 살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살아남기 위해 의도적으로 선의를 배제한다. 이 영화 속에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선의는 단 두 번 등장한다. 재호(설경구 역)의 현수(임시완 역)를 향한 선의, 병갑(김희원 역)의 재호를 향한 선의. 그 이유가 모조리 사랑이기 때문에, 그게 관객들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가장 사랑과 거리가 먼 것 같은 인물들이 '고작' 사랑에 휘둘리는 이야기. 이 영화 속의 재호에게서는 그 어떤 선의도 찾아볼 수 없다. 재호는 많이 웃지만, 결코 앞에 선 자의 마음을 안심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제 감정들을 감추고 상대의 기를 누르기 위해서 웃는다. 그가 살아남은 것은 결코 그가 사람들을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었을 것이다. 재호는 거리낌없이 사람을 죽이고, 더 이상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그런 그가, 현수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영화가 색감으로 보여주는 이 아릿한 과정은 씬이 바뀌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지나가서, 재호와 관객이 그 사랑을 눈치채기도 전에, 재호는 이미 사랑에 빠져 있었다. 현수를 감아보겠다고 말하는 순간, 그는 이미 현수에게 감겨 있었던 것이다. 

 

  그 사랑의 결과는 끝없는 선의이다. 재호는 현수를 다른 이들과 같게 대할 수 없고, 현수를 지키며, 자신을 내어주며, 그렇게 사랑한다. 그 사랑을 현수가 사랑이라고 느꼈을지는 모르겠지만, 재호와 함께 있는 현수는 두려움이 없어 보인다. 사랑받는 이들은 그렇게 빛난다. 제가 어떤 짓을 하고 무얼 달라 청해도 조건없이 내어줄 이가 있음을 인간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 영화가 비극으로 끝나버린 것은, 단지 그들의 배경이 '나쁜 놈들의 세상'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재호가 자신이 현수를 사랑한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신답지 않은 짓을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이 사랑임은 몰랐고, 자신이 그동안 해왔던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현수를 감으려 했다. 자신이 어디까지 내어줄지 미처 모르고. 아마 재호가 사랑을 깨달았을 때쯤에는, 이미 늦었을 것이다. 자신의 곁에서 웃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너의 어머니를 내가 죽였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재호는 깨달았어야 했다. 왜 제가 경찰을 무리해서 자기 편으로 만들려 하는지. 무수한 다른 핑계들을 걷어내면 실은 현수를 죽이고 싶지 않은 자신의 본심이 있었을 텐데. 하지만 그는 그걸 알 수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재호는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을 테니. 모든 감정은 숨겨야 마땅한 것이었고, 숨길 수 없는 감정은 죽여야 마땅했다. 죄책감과 동정심, 슬픔과 분노에 휘둘렸었다면 재호는 현수를 만나기도 전에 죽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만남은, 비극일 수 밖에 없었다. 

  정해진 비극임을 재호는 알았다. 현수의 전화를 받은 순간 결말이 다가왔음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참회를 다해 현수에게 사과를 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순간, 그때 재호는 이 비극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깨닫는다. 사랑, 사랑에서. 사랑했기 때문에. 설명할 수 없었던 단 하나의 이유로 저질렀던 그 모든 짓들이, 자신의 입과 코를 틀어막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사랑하는 현수에게 마지막 말을 건넨다. 너는 절대, 나 같은 실수는 하지 말라고.

 

한재호 매드뮤비: youtu.be/IoVF78ziRNo?list=PLAkRi0E0Gir47Tze4PTzae7FY4Ud0mnWH

 

  그러니까 내가 느꼈던 것은, 사랑이 정말로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나 살아남으려고 악착같이 애를 쓰던 한재호가 생과 사를 함께 하던 친구를 죽이고 모시던 보스도 죽이고 마침내는 제 발로 죽으러 가는 것이, 어떻게 그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싶다가도 사랑이라는 이유 하나로 전부 납득하게 된다는 점에서 경이롭기까지 했다. 

  너무 처절하게 끝나버려서 그 이후를 상상할 여력조차 남지 않게 만들어버리는 영화지만, 그래도 바랄 수 있다면 현수가 재호가 말한 실수를 사랑이 아니라, 사랑을 깨닫지도 못한 주제에 감정을 제 멋대로 휘두를 수 있다고 믿은 것이라고 깨닫게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재호와 같은 실수는 저지르지 않으면서 재호에게 받은 만큼의 사랑을 누군가에게 전해줄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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