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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인간이란 존재의 가벼움에 대하여

by seolma 2020.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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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_밀란 쿤데라

 

 

단 한 번 뿐인 삶, 그 무의미함

  책에서는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을 설명하며 우리의 삶이 반복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살면서 수많은 선택들을 하지만 결코 다른 선택의 결과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삶은 돌아오지 않고, 모든 선택은 단 한 번 밖에 오지 않으므로. 따라서 우리의 생은 단 한 번 뿐이다. 다른 선택의 결과를 영원히 알 수 없다면, 매 선택이 과연 얼마나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매우 가볍고, 마치 별 의미가 없는 것과 같다고 책에서는 말하고 있다. 

  이런 무의미한 생을 살아가는 인간은 존재가 가벼울 수밖에 없다. 한 번의 실수로도 죽어버릴 만큼, 얕은 사랑으로는 세상에 붙들어 놓을 수도 없을 만큼. 얼마나 많은 거짓 약속들에 사람들이 죽었으며, 얕은 동정은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가. 죽어버리고 싶은 사람은 없으므로, 우리는 그 가벼움을 참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무거워지기 위해 노력한다. 돌에 엮어두는 풍선 줄처럼, 우리는 손을 뻗어 주변에 있는 것들을 움켜쥐고 불안해한다. 언제 줄이 풀려 날아갈까 무서워하면서, 우리는 더 많은 것들로 안정을 찾으려 노력한다.

  그래서 인류는 가정을 꾸리고, 사회를 만들고, 도덕을 가르치고, 법을 제정했다. 이것들로 부족해 우리는 모두의 이면에 키치라는 인류적 유대감을 부여했다. 부모자식간의 사랑은 두텁고,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슬픈 것이다. 모든 인류는 이 사실에 동의할 수 밖에 없다. 전 인류를 아우르는 감정, 모성애, 인간이 짐승보다 중요하다는 인식, 죽음에 대한 애도 등. 키치는 논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 유일한 근거이다. 어쩌면 우리가 아는 도덕은 전부 키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노력들은 가볍디 가벼운 인류의 발버둥이다. 책 속의 사비나는 이 발버둥을 비웃지만,자신 또한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키치를 가질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우리 모두는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 삶에서 사랑이란_진정한 사랑

    주인공인 사비나와 토마시에게 사랑이란 나와는 다른 삶의 태도를 가진 이와 끊임없이 충돌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삶이 나한테는 무거운데 당신한테는 너무 가벼워. 이런 가벼움과 방종을 참을 수가 없어.” -프라하의 봄

  테레사는 삶이 가벼울 수 있다는 것을 경멸하고 두려워했다. 하지만 토마시에게 삶과 사랑이란 아무런 무게도 없는 가벼운 것이었다. 책과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인 <프라하의 봄>에 등장하는 토마시, 사비나, 테레사, 프란츠는 각각 가벼움과 무거움을 상징한다. 그들은 서로 다른 무게들로 인해 괴로움도 경이로움도 겪지만, 결국에는 모두가 뼈저린 존재의 가벼움을 느낀다. 이 가벼움은 우리 존재와 떨어뜨려 놓을 수 없는 어떤 것이다.

  이는 토마시와 테레사의 죽음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다. 서로의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에서 마침내 중심점을 찾아낸 그들은, 평화로운 행복의 순간 느닷없는 죽음을 맞이한다.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것, 이것은 인간의 존재를 그 무엇보다 가장 가볍게 만든다.

 

사비나의 수영장

  하지만 무거운 사랑 역시 서로를 숨막히게 할 뿐이다. 살기 위한다는 핑계로 다른 이를 움켜쥐고 소유하는 사랑은 과연 옳은가? 철학자인 릴케는 소유하는 사랑이란 진정한 사랑이 아니며, 진정한 사랑을 하기 위해 인간에게 우리가 불안정하고 가벼운 존재임을 인정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밀란 쿤데라는 가벼움이 완벽한 긍정일 수 없다고 대답한다. 인간이 자신의 가벼움을 인정한다면 인류가 민들레 홀씨와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 따라서 밀란 쿤데라는 가벼운 인류가 만들어내는 무거운 관계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사랑이라는 관계 또한 무겁기만해서는 안 되지만, 완전히 가벼울 수도 역시 없다. 관계를 엮는 순간 어쩔 수 없이 인간은 조금 더 무거워진다. 토마시는 가벼웠고, 테레사는 무거웠다. 하지만 그 둘은 서로를 사랑했고, 서로를 서로의 관계에 엮었다. 따라서 토마시는 조금 덜 가벼워질 수밖에 없었다. 테레사 또한 비록 토마시로 인한 새로운 무게를 얻었을지언정, 자신의 무거웠던 과거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쿤데라는 자연스럽게 뒤섞이는 열처럼, 무거움과 가벼움은 선과 악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뜨거움과 차가움처럼 뒤섞이고 중화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벼운 존재, 그 존재의 가벼움에 대하여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해야만 하는 수많은 선택들 중에 선과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에 의해 규정되며,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무거움과 가벼움만이 존재한다. 다양한 무게를 가진 선택들을 매일같이 마주치지만, 어떤 선택이 옳은지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은 단 한 번뿐이며, 우리의 선택들에 대한 결과를 알 수 있는 것도 단 한 번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삶은 지극히도 가볍다. 그러니까 우리의 존재라는 것은 미치도록 가벼울 뿐이라는 것,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우리 존재의 근원이라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온갖 무거움들도 거기에서 탄생했다. 날아가 버리고 싶지 않은 존재들의 사투가 우리가 만들어낸 무거움인 것이다. 바람에 날아가 버릴 만큼 가벼운 우리들은 날아가지 않기 위해서 옆에 있는 무언가를 붙잡는다. 조그마한 지구에 70억의 인구가 바글대며 살아가는 현대에서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것은 대개 옆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우리의 사랑이고, 관계이고, 가정이다. 하여 그 억지로 무겁게 만들어진 것들은 우리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 모든 관계맺음으로 인해 너는 네가 원하는 만큼 충분히 무거워졌는가? 아니면 그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너는 아직도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벼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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