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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독재자] 잘 만든 한 편의 우화/혁명의 방향성

by seolma 2022.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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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독재자

 

이 영화는 시작부터 묘한 느낌을 준다. 다큐멘터리도, 판타지도, 시대극도 아니고, 다만 한 편의 우화 책을 펼친 것 같다. 결코 밝지 않은 이야기와 결말을 가진 이야기를 애써 먼 거리에서 설명하느라 읽는 이들에게 안타까움과 절망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몇몇 책들(행복한 왕자, 왕자와 거지, 장미와 새 등)이 떠오른다. 보는 이로 하여금 저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 속에서 깊이 몰입하고, 그리하여 상처받도록 하는 영화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말 한 마디로 이 도시의 불을 모두 끌 수 있단다."
"불을 모두 꺼라."
그러자 불이 모두 꺼졌다.
-영화의 첫 장면

 

 

줄거리는 한 문단으로도 풀어 쓸 수 있을 만큼 간단하다. 'unknown' 나라의 독재자로 군림하던 대통령과 그의 손자가 하루아침에 벌어진 혁명으로 인해 그들의 궁전을 잃고 이리저리 도망다니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독재자는 자신이 다스리던, 그러나 한 번도 직접 겪어보지는 못한 자신의 통치 아래의 나라를 마주한다. 그곳에서 고통받고, 굶주리고, 잔인해지는 사람들을 본다. 

 

 

사람들은 굶으면 악해지기 마련이죠.
-독재자에게 옷을 빼앗긴 어느 미용사의 말

 

 

 

  어느 나라에 독재자가 살았습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던 그는 하루아침에 일어난 혁명으로 궁전도, 아들도, 그를 지키던 군인들도 잃고 어린 손자와 단 둘이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머리를 깎고 누더기를 걸치고 훔친 기타를 메고, 그럼에도 독재자는 자신이 다시 권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다만 어린 손자는 할아버지가 하자고 하는 이 재미없는 연극이 싫었지만, 그럼에도.

  돈 한 푼 없는 미용사에게 총을 겨누며 입은 옷까지 벗겨 빼앗던 독재자가, 도망치고 고통받는 사람들 곁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어느덧 그의 감옥에 갇혀 있던 정치범들과 함께 걷고, 독재자의 아들을 죽인 죄수를 업어주고, 자신의 옷을 벗어주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독재자였습니다. 
  마침내 도망칠 수 있는 바닷가에 도착했지만, 독재자의 얼굴을 알아본 마을 사람들은 군인들을 몰고 그를 쫓아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독재자와 그 손자를 총구 앞에 세웠습니다. 그러나 누구는 독재자가 매단 자신의 아들처럼 교수형에 처하자 하고, 누구는 독재자가 불태운 자신의 형처럼 화형에 처하자고 주장하는 바람에, 독재자는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손자는 함께 죄인들을 업고 걸었던 남자에게 구출되어 바닷가에서 사람들의 고성을 피해 귀를 막고 있었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독재자의 목을 베어 현상금을 타기로 결정했습니다. 도끼날이 독재자의 목을 내리치기 직전, 역시 마찬가지로 죄수들을 업고 걸었던 또 다른 남자가 그것을 막으며, 이대로는 끔찍한 독재정권이 되풀이 될 뿐이라는 이상한 말을 외쳤습니다. 독재자를 죽일 거라면 자신의 목도 치라며 눕는 남자에게 일순간 시선을 뺏긴 사람들이, 그럼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그가 바랐던 것은 훨씬 더 많은 무언가겠지만, 그는 답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춤을 추게 합시다."

  "민주주의를 위한 춤을."

  도끼를 든 사람은 그를 비웃으며 도끼날을 치켜들었습니다.

 

 

영화는 바닷가에서 기타소리에 맞춰 춤추는 손자의 모습으로 끝이 난다. 

 

 

왜 혁명이 일어났는지 알 것 같아요.
우리가 불을 다 꺼버리니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사람들이 혁명을 일으킨 거에요.
-독재자의 어린 손자가 바닷가에서 하는 말

 

 

감독은 "최근 '아랍의 봄' 이후에도 계속되는 살육과 폭력을 바라보면서, 왜 독재정권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비극이 계속되며, 민주주의의 회복은 좀처럼 찾아오질 않는가" 라는 의문을 갖고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집단 광기에서 시작하는 '정의 구현'과 요새 열풍처럼 유행하는 '참교육'이, 얼마나 정의롭지 않고 주관적인 것인지, 그리고 그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영화다. 

 

그리고 일말의 용서와 희망도 없는 세계는 살아가기 얼마나 절망스러운 것일지에 대해서도.
총구 앞에서, 자신을 향한 어른들의 분노로 가득 찬 말들에 울던 아이의 손을 이끌며 바닷가로 향한 사람에게 절절한 고마움을 느끼면서, 마지막 장면에 늘 그래왔던 것처럼 춤을 추는 아이의 모습이 잔상처럼 남는다. 

 

 

우리는 이제 복수와 폭력과 마녀사냥이 우리에게 일순간의 쾌락 말고는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가 되었다. 우리의 혁명은 보다 더 '사람-친화적'이고,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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