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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인물/후기/해석] 서래의 푸른 사랑에 대해

by seolma 2023.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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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많지만 오래 남을 영화는 별로 없다고 느끼는 요즘, 뒤늦게 우연히, 헤어질 결심을 봤다. 근래 본 영화 중 가장 인상깊고 좋았다고 느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들 그렇게 느낀 것을, 너무 늦게 봐서 올리는 것도 무의미하지만 기록용으로나마 쓴다. 

 

 

 


 

영화의 전개

  한 형사가 의문에 싸인 한 남성의 사망 사건을 파헤치며 벌어지는 일들을 박찬욱 감독만의 미학으로 풀어낸 영화다. 개인적으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속 인물들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장면들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도 역시 마찬가지다. 등장인물들이 '초록색'이라고 부르는 그 미묘한 푸른빛은 영화가 끝나고도 문득문득 떠오른다. 

  영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부산에서 벌어지는 첫 번째 살인 사건과, 이포라는 가상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두 번째 살인 사건. 박해일은 두 사건에서 모두 형사가 되고, 탕웨이는 두 사건 모두에서 용의자가 된다. 그렇지만 같지 않은 두 사건을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인물

서래

 

  두 사건에서 모두 용의자가 되는 서래라는 인물의 존재가 나는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영화가 주로 해준의 시점에서 전개되므로 보는 입장에서는 끊임없이 서래는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심정인지를 궁금해하게 되는데, 그렇게 우리가 해준의 시점에서 서래를 궁금해하는 동안 관중인 우리야말로 서래와 가장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서래는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 서래는 오직 해준만을 사랑한다. 살면서 본 적 없을만큼 사랑을 담뿍 담은 고운 눈빛으로 해준을 바라본다. 그 시선을 통해서 우리는 서래의는 사랑을 간접적으로 이해한다. 

 

 

해준

 

  내가 본 박해일 중 가장 매력적이었던 캐릭터였던 해준. 엄밀히 말하면 캐릭터 자체의 매력이라기보다는 서래의 눈에 비추어보았을 때 매력적이게 된다고 하는 게 맞겠다. 무미건조한 중년의 경찰을 사회가 보는 그대로 무념무상히 바라보다가도, 열렬히 그를 사랑한다고 외치는 서래의 눈망울을 볼 때마다, 해준의 캐릭터는 한 겹씩 더 매력적이 된다. 

 

음악

https://youtu.be/adOfY28Av-E

안개-정훈희&송창식

서래 다음의 장점은 바로 음악이다. 

연출이야 말할 것도 없고, 곳곳에 쓰인 음악은 영화가 흔한 사랑영화 그 이상의 감정을 다룬다는 것을 알려준다. '안개'도 그 중 하나다. 멜로디부터 가사까지, 서래와 해준의 사랑과 꼭 닮아있는 노래.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며 이 노래가 나올 때, 그 새까만 화면에서 우리는 바다에 갇힌 서래와 함께 숨쉬게 된다. 

 

마침내, 헤어질 결심

 

나는요, 완전 붕괴되었어요.
-해준

 

  산에서 격정적으로 입을 맞추는 순간이 아니라, 절에서 립밤을 나누어바르는 순간에 더 사랑하고 있었음이, 인생이 치는 장난같기도 하고 일어나서는 안 되는 아이러니 같기도 하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사랑을 말한 순간 죽어버리는 사랑이라는 것은 은근히 자주 체감하게 되는 일이라서, 서래에게 휴대폰을 바다에 던져버리라고 사랑을 고백하고 뒤돌아버린 해준의 안에서 사랑이 죽었다는 것은 깊이 이해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해준을 사랑했던 서래의 마음까지도. 우리가 하는 사랑이란 대개 해묵은 그림자를 붙들고 홀로 씨름하는 일이 아니던가. 

 

난 해준씨의 미해결 사건이 되고 싶어서 이포로 갔나봐요. 벽에 붙여놓고 잠도 못자고 오로지 내 생각만 해요.
-서래

 

  서래는 어떻게 그렇게 사랑할 수 있었는지. 그렇게 올곧게, 그렇게 마음 저리게. 서래가 잘 하는 것은 죽이고 죽는 것 밖에  없어서, 사랑함으로써 누군가를 지키는 남자라는 존재가 서래에겐 너무도 깊은 감명이었나보다. 그 사실이 슬펐다. 겨우 그것 하나로 목숨을 버릴 만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나와 같은 사람이 내가 할 수 없는 방법으로 나를 사랑할 때, 우리는 깊은 사랑에 빠져버린다. 

 

 


 

  박찬욱 감독이 그려내는 여자주인공이 늘 처연하고 가여울 수 밖에 없음이 때때로 슬프다. 그럼에도 서래 같은 인물들을 만날 때마다 그의 다음 영화도 봐야지, 하는 결심을 세운다. 

  영영 해결할 수 없는 감정과 이해와 사랑에 대해, 이보다 절절하게 표현할 수 없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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