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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책

[여자들의 왕-정보라] 그동안 배제되었던 캐릭터들이 이토록 치열하게 살아 남았음을

by seolma 2022.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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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심장이 두근대는 것이 아니라 인상이 찌푸려지는 분들께, 아마 당신은 생물학적 남성일 가능성이 높겠고, 한 가지를 묻고 싶다. 혹시 일에는 무엇보다 효율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길게 늘어진 맛집 줄, 운전 실력이 미숙해 우왕좌왕하는 도로 위의 초보 운전자, 떠드느라 일처리가 늦어지는 동사무소(주민센터의 과거 이름) 직원들을 보면서 화가 나는 편이신지. 그렇다면 효율을 중요시 여길 가능성이 높은데, 어째서 비효율의 극치인 편견과 혐오의 감정에는 그토록 관대한 건지. 

나는 그게 되게 우습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여하튼 제목과 달리 이 책은 사회과학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하고 있지는 않다. 이 책은 굉장히 순수한 재미로 가득찬 소설집이다. 그리고 치열한 생존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그 재미는 원초적이고 직관적인 재미다. 이런 류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만 하다. 당신이 편견에만 사로잡혀 있는 부끄러운 사람이 아니라면 그렇다. 

 

<여자들의 왕>은 주로 남성을 주인공으로 해서 틀에 박힌 형태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의 주인공을 여성으로 바꾼 작품들을 모은 책이다. _작가의 말 중

 

전형적인 기사 중심 서양 판타지를 공주와 용으로 초점을 바꾸거나, 무작정 폭력적이라 매도당하는 이슬람교 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중앙아시아를 여행하는 소녀와 한국 용 이야기,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다윗 이야기를 전부 여성으로 바꿔버리거나, 가부장제 하에서 남편에게 학대당하는 인물을 인간이 아니게 바꾸어 권력구조를 뒤틀거나, 동슬라브 중세 역사 유일무이한 진취적인 여성 지휘관인 올가 공주와 한국 일반 가정의 역사를 합쳐버리거나 하여 작가는 흔한 이야기들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별다른 이유는 없고 그게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더 일을 잘 하고, 더 재미있어서, 남성이 권력을 쥐고 남성 주연의 이야기들이 더 많다고 말하는 이들이 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미안하지만 그런 것은 세상의 권력구조를 결정하는 요인이 아니다. 결과와 원인을 제멋대로 바꿔버리면 세상을 제 입맛에 맞게 설명하기는 좋지만, 그것 외에는 아무런 장점이 없다. 

 

사회현상의 대부분은, 눈에 보이는 대부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원인에 의해서 나타난다. 그러니까 가난한 나라의 게으른 노동자들은 게으르기 때문에 가난한 것이 아니라 나라가 가난하기 때문에 게으른 것이다. 우리나라가 오늘과 같은 경제발전을 이룩하기 이전에 코리아 타임(Korea Time)이라는, 약속시간보다 항상 늦게 온다는 단어가 외국인 바이어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들은 대부분 시간 약속을 지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남성이 더 높은 성취를 보이는 것은 오래도록 남성중심의 사회가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형성된 권력구조와 인식이 성취로 이어진다. 그걸 부정하면 세상에 존립할 수 있는 사실은 아무것도 없다. 그게 사실이다. 

 

여튼 이 책은 아주 재밌기만 한 책이니 언제고 재미가 필요한 날에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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