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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임소연] 가치와 실제가 뒤섞인 현실에서 제대로 '보는 법'

by seolma 2023.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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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임소연

 

민음사 탐구 시리즈 중 네 번째 책인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은 과학기술학자인 저자가 저술한 책이다.

이 책은 페미니즘적인 시선으로 현대 과학기술과 그것이 내재한 허점을 분석한다. 진화론부터 인공지능까지, 현대 과학의 총체를 다루는 이 책을 따라 읽어가며, 우리는 새로운 시선으로 오늘날의 과학을 본다. 

 

과학이라는 신비

  '신비'라는 것이 허울 좋은 모양새를 하고는 많은 이들의 눈을 가리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무지와 방관 그 이상이 아닌 단어라는 것을 이 책은 이 한 권 동안 설명한다. 특히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이라고 믿어지는 과학이라는 것이 연구자의 눈과 손을 거쳐 얼마나 왜곡되는지, 그렇게 탄생한 우리 시대의 '과학'이 어떻게 가치와 주관과 뒤섞이는지를. 

 

과학연구가 사회적 가치와 무관하게 수행될 수 없다는 문제의식(책 44p 문장)

과학이 그려내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에 대해 발표된 연구들은 무수히 많다. 뇌부터 골격까지, 진화론과 유전학은 앞다투어 남녀의 유별한 차이에 대해 기술해왔다. 

과학계 연구, 출판의 특성 상 '차이가 없다'는 연구 결과보다 '차이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점이다. (42p) 

그러나 실제로 우리 과학이 주목했던 것은 일부에 불과할 지 모르는 차이이고, 남녀의 동질성이 더 우세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더 팽배하게 존재했을 동질성과 유사성이 성과와 사회적인 관심이라는 명목 하에 수없이 무시되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는 사회의 렌즈를 빼고 사실을 바라보려는 노력이다. 남자가 수학을 잘 하고 여자는 그렇지 않다고? 정말? 유전적 차이가 정말 성장과 사회화에 대한 사회환경의 영향보다 강렬할 것인가? 인류를 성별 만으로 이등분해버리는 것이 정말 자연과학/사회과학적으로 유용하고 의미 있는 일인가?

 

이러한 질문에서 새로운 과학기술들이 탄생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뉴로젠더링 네트워크이다. 

뉴로젠더링 네트워크 : 이분법적으로 단순화된 성 인식에 부합하는 과학 지식의 생산을 그만두고, 뇌의 성차에 관한 세밀한 연구와 새로운 서사를 만드는 것이 목표 (44p)

이 뉴로젠더링 네트워크에서 탄생한 개념이 '모자이크 뇌'라는 개념이다. 이것은 남자와 여자의 뇌가 이분법적으로 분류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뇌가 모자이크처럼 다양한 부분에서 닮고 또 다르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개념을 탄생시킨 신경과학자 다프나 조엘은 성별로 나뉜 집단이 아니라 개인에 기준을 두고 탐색하여 실제로 남녀의 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차이의 일관적인 분포를 연구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러한 일관성이 나타나는 뇌는 전체의 6%에 불과했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성별의 차이는 생물학/선천적인 뇌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사회가 정의하고 믿는 '젠더' 때문이라고. 

 

젠더도 하나의 신화와 같다고 책은 말한다. 여기서의 신화란 책 <사피엔스>에서 등장하는 '상호주관'과 유사한 개념이다.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고 인생을 결정짓는 요소들은 객관보다는 상호주관의 영역인 것들이 많다. 경제, 종교, 사회, 그리고 과학이라고 믿어왔던 어떤 것들이 그렇다. 성별의 차이도 마찬가지이다. 신비와 역사와 관념이라는 이유로 덮어두었던 당연한 것들을 뒤집고 들쑤시는 것으로 시작하는 과학 연구는 우리가 믿어 왔던 '차이'라는 것이 신화에 불과했다는 깨달음을 결과로 내놓을 것이다. 한때 질병이 신의 처벌이라고 믿었던 중세시대의 사람들이 미생물의 존재를 발견하면서 얻었던 깨달음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장은 생각한다

우리 몸의 기관 중 하나인 장은 현재 가장 뜨거운 화두 중 하나이다.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장과 뇌와의 연결성이다.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세로토닌의 95%가 장의 내분비 세포인 장내 크롬친화성 세포에서 생성된다고 한다. 그냥 넘어가기엔 어마무시한 수치이다. 장과 뇌의 연결은 우리의 생각보다 근본적이며, 그 연결이 상당히 대등하다. 

장과 뇌의 연결에 관한 최신 연구는 물질과 감정을 통합하여 이해하는 과학이다.(60p)

이런 식의 새로운 발견이 다양하게 이루어지려면, 비밀스럽게 공유되던 여성의 경험-생리통, 폭식증, 거식증, 입덧 등-들이 수면 위로 나와 과학이라는 분야 안에서 공유되고 연구되어야 할 것이라고 책은 말한다. 

여성의 경험을 과학 속에서 더 많이 공유한다면, 우울한 여성, 먹고 토하는 여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질 것이다.(60p)

 

사이보그가 되는 여성

 

인간을 닮은 로봇들이 발명되기 시작하며,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성 고정관념 역시 그 어느 때보다 명료하게 드러나고 있다. 

2021년, 20대 여성로 모델링 된 인공지능 서비스 '이루다'가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을 혐오하는 발언으로 인해 사회적 물의를 빚고 결국 서비스가 중단되는 결과를 맞았다. 

같은 맥락으로, 인간을 표방한 로봇들을 개발할 때에도 서비스업의 로봇은 주로 여성형으로, 전문직이나 노동자 로봇은 주로 남성형으로 그려진다. 로봇에 성 역할을 부여했던 사회는 그 로봇을 보며 또다시 새로운 성 고정관념을 배우게 된다. 

혐오를 재생산하지 않는, 차별과 편견을 정당화하지 않는 인공지능 서비스와 로봇을 만드는 것은 마땅히 우리 사회의 과학기술자들이 해야할 일이며, 까다로울지는 몰라도 분명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우리 사회는 이제 '사이보그'가 아닌 인간을 찾아보는 것이 더 어렵게 되었다. 

사이보그란 "기술과 결합한 생명체"라는 뜻으로, 넓은 의미에서는 치아 보철물을 사용하는 사람, 성형 수술을 받은 사람, 렌즈 삽입술을 받은 사람들까지도 사이보그에 해당한다. 

21세기, 특히 성형강국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의 여성들은 누구나 사이보그가 될 수 있고, 다수가 그렇게 되기를 택한다. 

21세기 젊은 한국 여성들의 모습은 20세기 사이보그 전사를 닮았다. 살아가기 힘든 환경에서 생존하고자 스스로 자신의 몸을 개선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161)

기술은 이제 더 이상 두렵지 않고, 우리의 이득을 위해 언제든 손 뻗어 이용할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가 완전히 지배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다. 사이보그가 되는 과정은 기술을 사용하기 전후로 딱 잘라지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사용한 후로도 이어지는 끊임없는 돌봄(항생제를 먹고, 부은 부위를 찜질하고, 음식을 갈아 죽으로 마시고,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한, '나의 것이지만 나의 것이 아닌' 몸에 순응하고, 저항하고, 설득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현실의 사이보그는 마법처럼 한 번에 변신하여 적응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품고 있는 기술에 대한 환상은 깨져야 한다고 책에서는 말한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비현실적이고, 성형 수술로 원하는 정체성을 다 가질 수 있다는 것도 비현실적이다.(193)

 

 


 

현실은 사실과 가치가 말끔히 분리되기보다는 뒤섞여 있다.(139)

 

과학도 마찬가지다. 객관적이고 인간 사회의 혼란과는 동떨어진 것이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인류가 만들어낸 과학이라는 학문은 어쩔 수 없이 우리의 눈과 손과 입을 거친다. 그러므로 당연하게 왜곡과 편파라는 오류를 포함할 수 있다. 

과학이라는 학문이 오랫동안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온 것도 과학이 기울어지고 일부분 신비로워진 것에 기여했을 것이다. 때로 혹자는 그것이 능력의 차이에서 기인했다는 능력주의를 주장하지만, 그것 역시 허황된 신화일 뿐이다. 유리천장을 개인의 훌륭한 능력으로 뚫고 올라간 소수의 일류 여성과학자 뿐 아니라, 이류 여성 과학자들도 과학계에 만연한 이류 남성 과학자들의 수만큼 과학계에 당당하게 존재하여 정년을 맞을 수 있을 때에야 진정한 과학계의 성평등이 실현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것은 현재 과학계에 종사하고 있는 여성들 뿐 아니라 과학자를 꿈꾸는 여학생들에게도 적잖은 동기부여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과학의 오류를 가려내고 새로운 시각의 과학이 발전하는 것을 돕는데에 천재는 필요하지 않다. 

지금 우리 과학에 필요한 것은 사회의 소수자들과 기울어가고 있는 자연계의 균형을 신경쓸 수 있는 새로운 시선이다. 저자는 조언한다. 마음껏 실패하고 좌절하라, 왜냐하면, 

 

본다는 것은 보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고 배움에는 실패와 반복이 동반된다. (195)

 

 

무수한 실패와 반복 끝에 어느덧 보이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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