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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책

한강의 채식주의자 해석 [채식주의자-한강]

by seolma 2023.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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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어서 술술 읽히는 책이 오랜만이라서 기뻤다. 

내용이 가볍지 않은데도 모든 감정과 상황이 이해가 너무 쉽게 가서 읽기가 편했다. 디 아워스라든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든가 82년생 공지영에서 이미 접한, 결혼 생활을 하는 여성의 본질적 우울에 대한 장편 서사. 필연적인 을이 될 수 밖에 없는 평생에 자신이 기어들어왔고 결코 벗어날 수 없음을 뛰어난 직관력으로 인지해버린 여자들의 불행. 그들은 때때로 '미쳐' 버리고, (남성적) 세상이 이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 삶을 벗어나기를 택한다. 주머니에 돌을 넣고 강으로 걸어들어가고, 식사를 거부하며 말라 죽는다. 

이런 작품들은 이제 너무나도 당연하게 문학의 일부로 출간된다. 그러나 여전히 욕을 먹고, 여전히 작가들을 더 큰 고뇌에 빠뜨린다. 원치 않게 왜곡되고 비난받는 여성문학이라는 것은 이젠 너무도 흔한 일이라서, 심지어 어떤 이들은 골치아프고 불편하다며 그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기를 바라기도 한다. 불편함이야 말로 삶의 속성인데도. 태어나고 사는 것이 당연한 이들은 그걸 모른다. 

 

이 책도 불편하다. 심지어는 채식주의자를 금서로 지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들은 적이 있다. 그 모든 반발들은 내게는 퍽 웃긴데, 그게 마치 삶을 살아본 적 없는 이들이 삶을 묘사한 이야기를 읽고 겁에 질려 우는 꼴과 비슷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두렵고 불편하다고 삶을 거부할 수는 없다. 살아본 적 없는 모습이라는 핑계로 너희의 인생에서 우리를 지워버릴 수는 없다. 우리는 함께 존재하며, 불행과 불편함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서론은 여기까지 하고, 이제 책의 줄거리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영혜는 별안간 삶의 무정함을 느낀다. 남편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글은 그럼에도 영혜를 안타깝게 느낄 수 있게 한다. 손쓸 수 없이 삶에 퍼져버린 무력감. 그 무력감과 불행의 원인을 그녀는 꿈에서 본다. 그녀를 붉게 적시고 떳떳하게 양지에 나아가 자아를 표출하지 못하게 만든 원인은 바로, 고기였다. 영혜는 자신에게서 매 끼니의 식사와 원치않는 성관계와 안정적인 집안의 유지를 착취하는 남편에게 불만을 갖고 있으면서도, 지구의 다른 생명체를 착취했던 자신에게 환멸을 느낀다. 그 환멸은 그녀의 꿈으로 표출되며, (우리는 꿈을 통해 현실을 자각하므로) 그 꿈을 꾼 이후로 그녀는 예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없게 된다. 일순간에 그녀의 일상이 무너진다. 인간으로서 사람답게 살아야 하던 이유를 잃은 순간, 영혜는 아무에게도 해를 끼칠 수 없는 존재가 되고자 한다.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 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그러나 다른 생명체를 해치지 않으려 식사를 거부하는 그녀의 몸은 말라만 가고, 마침내 더 이상 가슴도 둥글지 않고 뾰족해지자, 종래에 그녀는 나무가 되고자 한다. 
뾰족하지만, 어떤 생명도 해치지 않고도 우뚝 서서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

 

영혜가 인간됨을 거부하는 순간 그녀의 가정이 무너지고, 영혜의 언니와 그 남편이 다음 화자로서 책을 이어가게 된다. 책은 세 챕터가 연작처럼 이어지는 구성을 하고 있는데, 영혜의 남편의 시점, 언니 남편의 시점, 언니의 시점으로 이어진다. 주인공은 영혜지만, 사실은 화자 세 명을 합한 네 명이 주인공이나 다름없다. 

책은 조금 불편하게 우릴 찔러오지만, 책이 끝마칠 즘에는 허한 마음으로 죽은 이들과 살아남은 이들을 함께 추모하게 될 것이다. 가끔 세상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믿기에는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에코페미니즘이라는 사상과 결부된다. 

에코페미니즘은 가부장적-착취적 프레임과 여성적-지속가능적 프레임이 대조된다고 설명하는 이론이다. 에코페미니즘의 시각에서 근대의 파괴적인 개발과 성장은 가부장제의 폭력적인 착취와 유사하고, 이러한 상황적 동치성에서부터 우리가 나아가야할 새로운 방향성을 지속가능한 새로운 프레임으로 제시한다. 

기존의 페미니즘은 이미 이루어진 거대한 자본주의 발전을 동의하고 여성을 거기에 편입시키자는 의견이라면, 에코페미니즘은 발전주의의 부작용에 주목하며 기존의 프레임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보다 이상적이고, 보다 비현실적이지만, 기후위기와 환경오염이 점점 심각해지는 오늘날 분명 누군가는 머리 싸매고 고민해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질서가 편안하고 당연한 사람들은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질서를 역전시키고 다른 방식의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은 구조나 체제 안에서 차별과 억압을 경험한 사람이다. 구조적으로 억압받은 경험이 있는 여성이 환경문제에, 지구를 착취하는 문제에 더욱 공감하고 연대하며 목소리를 내는 이유다. 

출처 : 우먼타임스(http://www.womentimes.co.kr)

 

그러니 영혜가 꾼 꿈을 그녀의 남편은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되려 나중에 영혜를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는 건 그녀의 언니다. 비슷한 착취와 모멸과 좌절의 끝에, 그녀는 그녀의 동생을 이해하게 된다. 

그녀가 먼저 미치지 않았다면 어쩌면 자신이 미쳤을지 모른다고. 

지금 그녀가 남모르게 겪고 있는 고통과 불면을 영혜는 오래전에, 보통의 사람들보다 빠른 속력으로 통과해, 거기서 더 앞으로 나아간 걸까. 

 

그녀들의 삶에 퍼져 있는 폭력과 가부장제의 억압 속에서 영혜와 자신은 결코 자유로웠던 적 없고, 영혜는 다만 가장 강한 방식으로 그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한 것이다. 

초록빛 풀의 영감. 예술가 특유의 성관념과 묘한 분위기를 나는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예술은 여전히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온몸에 꽃을 그리고 삶의 무상함을 온몸으로 표현했을 영혜가 눈물나게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함께 읽어보면 좋을 기사.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79845.html

 

지구와 여성이 중심이 되는 ‘에코페미니즘 세계’로 가자

[새해 연속기고ㅣ 2021, 11개의 질문] ⑪젠더와 지구반다나 시바(세계화국제포럼 상임이사)

www.hani.co.kr

 

 

참고

https://www.women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9283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7984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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