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나한테 한정된 나날 속에서 영원함을 줬어.
암은 현대의 질병이다. 노화의 부작용들 중 하나로 나타나는 암은 우리의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들 그 자체라는 점에서, 다른 어떤 질병보다 치료하기 까다롭고, 우리를 절망하게 한다. 하지만 암이 무엇보다 끔찍할 때는, 어린 아이들에게서 발병할 때가 아닐까. 노화는 커녕 성장조차 하지 않은 아이들에게서 어떠한 원인으로 발병하는 암. 헤이즐과 어거스투스는 그래서 자신들을 부작용이라고 부른다.
우울증은 죽음의 부작용이다.
걱정은 죽음의 또다른 부작용이다.
향수병은 죽음의 부작용이다.
자신이 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죽음의 또 다른 부작용이다.
헤이즐은 매 순간 죽음의 부작용들을 발견한다. 사실 인간의 삶 자체는 죽음에서 파생되기 때문에, 우리의 삶의 모든 것들은 죽음으로써 한정된 시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헤이즐은 쏟아지는 부작용 속에서도 우직하게 삶을 살아 나간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동정어린 시선들을 지긋지긋해 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암 환자로써 같은 처지의 친구들이 느낄 감정을 배려하고, 헤이즐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하는 이들에게 이해한다며 웃어 보인다.
내가 책임져야 할 죽음의 숫자를 줄이고 싶어서_헤이즐
헤이즐은 자신이 죽어버리는 순간 주위의 모든 이들에게 파편을 날리는 수류탄 같은 존재가 될까 두려워한다. 나는 이러한 헤이즐의 걱정이 그의 사려깊은 심성에서 왔다고 생각한다. 거스는 헤이즐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 애는 이 지상을 가볍게 걸어요. 헤이즐은 진실을 알아요. 우리가 우주를 돕는 만큼이나 상처를 입히고 있고, 어느 쪽도 별로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요_거스
사람은 죽음을 인식하는 순간 공포에 질린다. 공포에 질린 인간은 파괴적이며,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을 붙잡거나 혹은 생채기라도 내려 발버둥친다. 거스 또한 그랬다. 자신이 위대한 선을 위해 죽지 못한다는 사실을 한탄했으며 사람들의 기억에 남지 못할 것을 슬퍼했다. 병에 걸려 죽는 것은 영웅적이지도, 위대하지도, 역사적이지도 않은 일이니까. 헤이즐처럼 자신의 죽음을 깨지기 쉬운 유리처럼 조심히 다루는 사람들은 흔치 않다. 거스는 헤이즐을 보며 깨닫는다. 자신의 불안함을 안정시키기 위해 자신을 휘둘러 주위에 상처를 입히는 행위보다, 조용히 남들을 살피며 자신이 남길 발자국을 최소화하는 것이 더 영웅적인 일임을.
천연두 백신을 발견한 사람은 정말로 뭔가를 발명한 게 아니에요. 그저 우두를 앓는 사람들이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챈거죠.
현재 살아있는 인구의 14배만큼의 인구가 죽었다고 한다. 한 명 당 14명씩이 배정되는 숫자다. 우리가 추모하려는 마음만 먹는다면, 이제까지 죽은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잊혀지지 않고 추모받을 것이다. 어거스투스는 여기서 어떤 희망 같은 걸 발견한 듯 했다.
우리는 잊혀짐을 두려워한다. 고통과 죽음과 구토와 소변과 질병을 일반적이고도 정상적인 삶의 저 이면으로 밀어버리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것들이 삶의 일부임은 변하지 않는다.
"기분은 좀 나아졌어?
"아니."
"그게 고통의 특징이지"
"고통이란 느껴야만 하는 거거든."
고통이란 느껴야만 하고, 죽음이란 인식되어야 하고, 질병과 모든 더러운 것들도 역시 마찬가지다. 흔한 말이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다는 말처럼, 삶과 죽음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과 함께 살아야만 했던 헤이즐과 거스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제 이 책을 읽는다면 우리도 역시 죽음의 무게를 느끼게 될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그것이 우리의 삶을 더 빛나게 해줄 것이다.
살아있는 모두가 고통과 죽음을 경험하고도 기꺼이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아래의 노래와 책을 추천한다.
모든 죽은 이들에 대한 추모곡: Memories_maroon 5
삶의 공허함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보고 싶다면
책 속의 문장들
출처: https://in-mybookshelf.tistory.com/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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