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 / 007 & 노찬성과 에반 / 039
우리의 곁에는 언제나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그 죽음은 우리를, 우리 곁의 친구를, 연인을, 부모를, 자식을 노린다. 죽은 것의 곁에는 슬픔이 남는다. 그 슬픔은 언제나, 살아남은 이들의 몫이다.
죽음을 일순간에 찾아온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느닷없이, 거부할 수 없이 삽시간에. 평범한 공간과 삶은 일순간에 슬픔과 후회와 미련의 공간으로 변모한다. 가족의 죽음은 집을 그렇게 만든다. 가장 편안하게, 가장 많은 숨을 쉬는 공간은 그렇게 순식간에 고통스러운 공간이 된다. 김영하 작가가 그런 말을 했다. 집에는, 우리가 사는 공간에는 삶의 상처가 있다고.
어딘가 어렵게 도착한 기분. 중심은 아니나 그렇다고 원 바깥으로 밀려난 건 아니라는 안도가 한숨처럼 피로인 양 몰려왔다. 그 피로 속에는 앞으로 닥칠 피로를 예상하는 피로, 피곤이 뭔지 아는 피곤도 겹쳐 있었다._.입동
죽음은 한순간이지만, 그 흔적은 길다. 사람들은 문득 들리는 아이의 웃음소리에서, 집안의 벽지에서, 휴게소의 핫바에서 죽음을 느낀다. 남아 있는 자들은 기약없는 고통 속에 몸부림쳐야 한다. 단지 살았다는 이유로, 죽은 이는 죽고 산 이는 살았다는 이유로. "이만큼 울어줬으니 되었지 않냐고" 말하는 이들을 상대하면서, 그렇게 살아야 한다.
노화는 삶의 부작용이다. 늙어가는 생명체들은 언젠가 죽는다. 그 끝을 예감하는 이들은 그래서 더 초연해진다. 에반도 그랬다. 아직 어린 찬성이 어떤 마음으로 저를 바라보는지, 에반은 이미 알고 있었다. 에반의 안락사를 위해 찬성이 한푼 두 푼 모은 돈이 점차 줄고 줄어드는 것을, 에반은 어떤 마음으로 기다렸을까.
마침내 에반이 죽고 찬성은 용서란 단어를 떠올린다.
-할머니, 용서가 뭐야?
-없던 일로 하자는 거야?
-아님, 잊어달라는 거야?
-그냥, 한 번 봐달라는 거야._.노찬성과 에반
이 책은 말 그대로 유리조각처럼 와서 박힌다. 다음 문장을 읽는 것이 두려워 멈춰가면서, 찔린 곳이 아파 울면서 책을 읽고 나면 마치 내가 이 모든 것을 경험한 것처럼 지치게 된다. 그러고 나면 묘한 허무함이 남는다. 정말 죽음을 겪어낸 것처럼, 그 후의 그 모든 고통들을 감내해본 것처럼.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는 어쩌면 위로가 될 것이고, 아파보지 않은 이들에게는 위로를 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고, 아파본 이들에게는 공감할 수 있는 책이 될 것이다.
같은 슬픔의 다른 작품
>>>죽음에 대한 시_in-mybookshelf.tistory.com/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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