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말할 수 없는, 혹은 이제야 말할 수 있는. 그렇게 오랜 이야기와 그렇게 대단한 우연들을 쌓고도 그저 흘려보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
목련 후기
복효근
목련꽃 지는 모습 지저분하다고 말하지 말라
순백의 눈도 녹으면 질척거리는 것을
지는 모습까지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그대를 향한 사랑의 끝이
피는 꽃처럼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지는 동백처럼
일순간에 져버리는 순교를 바라는가
아무래도 그렇게는 돌아서지 못 하겠다
구름에 달처럼은 가지 말라 청춘이여
돌아보라 사람아
없었으면 더욱 좋았을 기억의 비늘들이
타다 남은 편지처럼 날린대서
미친 사랑의 증거가 저리 남았대서
두려운가
사랑했으므로
사랑해버렸으므로
그대를 향해 뿜었던 분수 같은 열정이
피딱지처럼 엉켜서
상처로 기억되는 그런 사랑일지라도
낫지 않고 싶어라
이대로 한 열흘만이라도 더 앓고 싶어라
너는 또 봄일까
백희다
봄을 닮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래서 여름이 오면 잊을 줄 알았는데
또 이렇게 생각이 나는 걸 보면
너는 여름이었나
이러다가 네가 가을도 닮아있을까 겁나
하얀 겨울에도 네가 있을까 두려워
다시 봄이 오면
너는 또 봄일까
저만치 와 있는 이별
이정하
하루에 한 시간씩 덜 생각하자 합니다. 하루에 한 번씩 덜 떠올리자 합니다. 당신은 모르십니다. 그 한 번으로 인해 내 목줄이 얼마나 조여지는지를. 그 한 시간으로 인해 내 목숨이 얼마나 단축되는가를. 하루에 한 시간씩 덜 생각하자 합니다. 당신이 내게 하루에 한 시간씩 덜 살으라 합니다.
선운사에서
최영미
(...)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것은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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