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s/책

[타임머신-허버트 조지 웰스] 802701년의 미래

by seolma 2021. 2. 7.
728x90
반응형

타임머신

 

  1895년, 과학의 발전과 함께 시공간에 대한 현대적인 개념이 잡히기 시작할 무렵, 허버트 조지 웰스는 이 '타임머신'을 만들었다. 물론 진짜 기계는 아니고 종이에 적힌 글들을. 하지만 이 소설을 끝마친 독자들은 잠시나마 그런 터무니없는 의문을 갖게 된다. 작가가 정말 시간여행을 하지 않은 것이 맞나? 작가에게 정말 타임머신이 있었던 건 아닐까? 작가가 그려내는 802701년은 그만큼이나 선명하다.

 

 

 

어둠과 빛이 순식간에 교차되었기 때문에 번쩍거리는 빛에 눈이 아플 지경이었습니다. 간헐적인 어둠 속에서 나는 달이 빠른 속도로 회전하면서 초승달에서 보름달로 변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원을 그리며 돌고 있는 별들도 어렴풋이 보았습니다. 
-시간여행자의 여행기 중

 

시간 여행자는 기계에 매료되어 이런저런 것들을 만드는 사람이다.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과 모여 자주 토의를 하는, 허버트 조지 웰스 시대의 지식인 중 하나로 보인다. 

어느 날 그가 모임에서 갑작스럽게 자신이 타임머신을 만들었다고 발표한다. 모임의 사람들은 대부분은 그를 믿지 않고, '나'는 반신반의한다. 그리고 그 다음번 모임에서, 시간여행자는 모임 시간에 한참이나 늦게, 옷은 헤지고 다리를 절며 도착한다. 허겁지겁 배를 채운 그가 내놓은 말들은 서기 802701년의 미래를 다녀온 여행기였다.

 

시간여행자의 말을 옮겨적은 '나'의 시선에서 이 모든 이야기를 듣는 나로서는, 시간여행자가 꽤 무모하고 충동적으로 일을 벌였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성냥갑 한 개만을 가지고는 미래로 떠났다. 그것도 근미래가 아닌, 몇 만년 쯤이나 흐른 미래로. 그때까지 인류가 남아있는 것도 기적같지만, 80000년 후의 대기가 여전히 현대의 인간이 숨쉴 만 한 것이라는 사실도 기적같은 일이다. 어쨌거나 이 책은 1800년대에 쓰여졌다. 시간 여행이 불가능하다는 보편적인 상식조차 설립되지 않은 때에. 그래서 이런 소설도 나올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그곳에서 푸르고 따뜻하고 아름다운 낙원과 같은 지상을 본다. 무너진 유적지들에서 사는 미래의 인류는 뾰족한 턱과 큰 눈, 작은 귀와 곱슬거리는 머리카락과 혈색이 그대로 비쳐보이는 갓난아기 같은 얼굴을 한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작았고, 무르고, 어린아이처럼 상냥하고 순수하지만 미지에 대한 탐구심과 생존을 위해 필요한 지식들이 결핍된 상태였다. 시간여행자는 그들의 안락하고 편리한 삶이 이제는 필요가 없어진 뇌활동을 퇴화시켰다는 가설을 세웠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오늘날의 연구들이 증명하지만, 신체활동이 줄어들면 뇌는 스스로의 활동을 줄인다. 결국 현재 우리의 크고 똑똑하다는 뇌는 과거 치열하고 고되게 살아남은 고대 인류의 유산인 셈이다. 생존을 위한 필요가 사라지자, 자연히 뇌도 사라진 것이다.

 

시간 여행자는 그들의 언어를 배우며 그들과 함께 과일을 따먹으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그는 자신의 타임머신이 사라졌음을 깨닫는다. 공포와 분노에 질려 조그만한 미래의 인류들을 몰아붙이며 화를 내지만, 아무 소득 없이 돌아올 뿐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밤에, 그는 어둠 속에서 원숭이 같기도 하고 네 발 짐승 같기도 한 것들을 발견한다. 그들은 멀리서 서성거리다 사라졌다. 

 

나는 지금까지 어떠한 인간이 고안한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가장 절망적인 덫을 만들어 거기에 스스로 걸려든 것입니다.
-시간여행자의 말 중, 타임머신의 실종에 대하여

 

이후 그는 지상을 둘러보다 마치 우물 같이 생긴 구조물들이 곳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본다. 그리고 그 어둠을 관찰하다, 어둠 속에 밤에 본 것과 같은 존재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들 역시, 인류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지상의 언어를 통해, 그는 지상의 인류는 '엘로이', 지하의 인류는 '몰록'이라고 부르는 것을 깨닫는다. 그의 가설은 이렇다. 지하철이 지하에 세워지고, 노동자들의 일터가 지하에 세워지는 것과 같이, 미래 인류는 아름답지 않은 노동을 지하로 밀어내기 시작했을 거라고. 그 결과 노동자 계급은 지하에 적응하여 살게 되고, 그들을 부리던 인류는 지상에서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게 된 것이라고. 

 

책을 새롭게 읽고 싶다면 더 이상 읽지 않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스포일러 포함!!

 

내 설명은 아주 단순했고 충분히 그럴듯했습니다. 잘못된 이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말입니다.
-시간여행자의 설명 중

시간여행자는 타임머신을 찾기 위해 두려움을 무릅쓰고 우물 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그는 끝없는 암흑과 마주한다. 환기구와도 같은 터널에서 지쳐 쉬는 그에게 몰록들이 다가와 몸을 기어오르자, 그는 앞을 보기 위해 성냥불을 켠다. 그러자 회백색의 피부와 번쩍거리는 커다란 눈을 가진 그들은 강한 빛을 이기지 못하고 어둠으로 도망갔다. 시간여행자는 본능적으로 강한 거부감과 공포를 느낀다. 밝지 않은 성냥 불빛으로 관찰한 지하세계는 거대한 기계들이 작동되고 있으며, 지상의 공기를 끊임없이 끌어오는 환풍기구가 작동되고 있었다. 그리고 몰록들의 식탁에서 시간여행자는 붉은 고깃덩어리를 발견한다. 인류에게 유해한 벌레들과 짐승들이 모조리 개량되고 대형 짐승들은 모두 멸종한 이 미래에서 저들은 무얼 먹고 있는 걸까. 시간 여행자는 의문을 갖지만, 몰려오는 몰록 떼에 결국 허겁지겁 지하를 벗어난다. 

지상에 올라와 어둠을 두려워하는 엘로이들의 모습을 제대로 보기 시작하면서, 그는 몰록의 식탁에 있던 것의 정체를 깨닫는다. 동시에 과거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현재는 몰록과 엘로이의 관계가 가축과 그들을 사육하는 사람의 그것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이후는, 책으로 만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나는 우리의 미래가 저런 모습일거라고는 생각치 않지만(80000년 동안 인류가 지구에 살 수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치 않는다.) 이 책이 상당히 훌륭한 가설이라는 것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말하자면 이건 1895년의 시대상에서 뻗어진 가장 극단적인 가지인 것이다. 그리고 인류의 계급화는 현재까지도 해결되지 않았고, 오히려 악화되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세계적인 공감을 얻는 명작으로 떠오르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 외 많은 부분은 21세기인 지금과 많이 다르다. 우리는 누구보다 절실히 깨닫고 있다. 자연을 완전히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심지어 일부만을 우리 멋대로 다룰 수도 없다. 지독한 산업화를 지나며 인류는 서서히 깨달았다. 자연은 짓밟고 이겨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그러한 생각을 버리지 않는다면, 인류의 미래는 처참할 것임을. 허버트의 상상과 같은 802701년의 낙원은 오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의 먼 미래를 상상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핵전쟁? 지금보다 더 심각한 바이러스? 지구의 인류는 너무나 많고, 현재도 늘어나고 있으므로, 필연적으로 극단적인 방법이 시행될 지도 모른다. 혹은 우연찮게 쉽게 해결될지도, 혹은 그 전에 심각해진 지구의 환경이 먼저 덮칠지도.

 

한치 앞도 알지 못하는 우리는 이런 빈약한 상상력에 기대어서라도 내일을 살아간다. 우리의 앞날에 있는 것이 부디 허버트의 상상과 같은 식인의 세계가 아니길, 심지어 그보다 최악인 어떤 세계가 아니길 바라며.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