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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시 모음집

당신은 한번도 당신을 벗어난 적이 없군요 [구름/무위/햇볕/위로 시 모음]

by seolma 2023.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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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

: 아무 것도 되지 못 하거나 이루지 못 함.

 

무위한 삶에 대하여.

 

 

 

구름의 망명지

                                           이대흠

고향을 적을 수 있다면 당신은 구름의 망명지로 갈 수가 없습니다 구름의 거처에는 주소지가 없으니까요 구름에겐 이력서도 없습니다 기록하는 것은 구름의 일이 아닙니다 구름은 언제든 자기로부터 벗어납니다

당신은 한번도 당신을 벗어난 적이 없군요

구름이 되려면 머무르지 마십시오 아무리 아픈 곳, 아무리 아름다운 곳이라도 지나쳐야 합니다 뜨거움과 차가움도 당신의 이름이 아닙니다 여기가 아니라 저기가 집입니다 주어가 사라진 문장처럼 가벼워져야 합니다

있다와 하다의 사이를 지나 구름의 망명지로 갑시다 죽은 별이 자신의 궤도를 내려놓는 곳입니다 그곳에서는 당신의 안전이 당신을 해치지 못할 것입니다 공기처럼 당신은 당신을 벗을 수 있습니다 당신에게서 달아난 당신만이 도착할 것입니다

 

 

 

 

 

숨, 몸, 꿈

                 신용목

인형을 부풀리기에 적당한 말,

공기.

내가 걸어가는 공기 속에서 왼쪽과 오른쪽이 잠시 갈라졌다가 돌아보면, 다시 합쳐져 나를 바라보는 공기가 있다.
오랫동안
우리는 서로를 가두고 있었다.

내 몸에서 나온 공기로 너를 채우는 형식이거나 네게서 나온 공기로 내 몸을 채우는 방식이었다.
꼭 숨이라는 말로 가득 찬 물속 같았다.

아무리 걸어도 서로를 지나갈 수 없었다.

왼쪽에 있다고 쳐다보면 오른쪽에 있거나 오른쪽에 없다고 돌아보면 왼쪽에 없었다.

이쯤에서
나를 너의 생각으로부터 꺼내줬으면 한다.
탈탈 털어서 널어줬으면 한다.

공기 속으로 공기를 날려보내는 일.

빨래가
희다.

하얀 것들을 보면 아기가 생각난다. 왼쪽과 오른쪽이 사라진 수평선이 생각난다.
하얀 것들 속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하얀 수평선을 긴 포물선으로 당기며 아기가 부풀어오를 때 누군가 뾰족한 말로
펑, 터트렸다.
바닥에 떨어진 빨래처럼 우리는 주저앉았다. 

 

 

 

풍경의 깊이  

                             김사인

바람 불고
키 낮은 풀들 파르르 떠는데
눈여겨보는 이 아무도 없다.

그 가녀린 것들의 생의 한순간,
의 외로운 떨림들로 해서
우주의 저녁 한때가 비로소 저물어간다.
그 떨림의 이쪽에서 저쪽 사이, 그 순간의 처음과 끝 사이에는 무한히 늙은 옛날의 고요가, 아니면 아직 오지 않은 어느 시간에 속할 어린 고요가
보일 듯 말 듯 옅게 묻어 있는 것이며,
그 나른한 고요의 봄볕 속에서 나는
백년이나 이백년쯤
아니라면 석달 열흘쯤이라도 곤히 잠들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석달이며 열흘이며 하는 이름만큼의 내 무한 곁으로 나비나 벌이나 별로 고울 것 없는 버러지들이 무심히 스쳐가기도 할 것인데,

그 적에 나는 꿈결엔 듯
그 작은 목숨들의 더듬이나 날개나 앳된 다리에 실려 온 낯익은 냄새가
어느 생에선가 한결 깊어진 그대의 눈빛인걸 알아보게 되리라 생각한다. 

 

 

 

무위

: 어루만지거나 위로하여 달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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